<엄마를 보내며>

엄마 장례를 마치고 마음을 정리해 올립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 이

들의 마음을 대신해서 쓰려 했는데, 어떨지요. 좀 긴 글이어 죄송하고 읽어 주

시면서 함께 마음 나눠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1.

무슨 말부터 써야 할까? 언제가 이 날이 올 줄은 알고 있었지만. 수많은 성도

들을 보내고 수많은 위로와 소망의 글을 써 온 목사이지만, 벌써 몇 번이고

썼다 지우고 썼다 지우고. 오늘따라 내 필체는 왜 이리 짧은지, 엄마를 담을

수 없어, 엄마를 표현할 길 없어서.

    
엄마를 보내고서야 나는 알았습니다. 내 마음과 생각 속에 엄마가 얼마나 크

고 큰 분인지. 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얼마나 깊이 자리해 계시는지. 57년

살아 온 인생에 엄마가 얼마나 큰 산이셨는지.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저 치악산 깊은 골짜기 이름 없는 들풀들까지

들리도록 목소리 높여 전합니다. “세상에 모든 엄마는 천사이지만, 천사 중의

천사가 이 땅에 계셨음을. 예수님을 제일로 닮은 천사가 우리 곁에 내려 왔다

하늘로 올라가고 계심을”.

    
2.

초등 학교때 피난 내려와 남의 집 식모살이로 희망원 보모로, 부모 없는 고아

처럼 사셨던 세월.

20살에 결혼해서 먹뱅이 시댁살이, 첫 아이를 가지니 남편은 군대 가고, 해

보지 않은 낯선 농사일에, 얼마나 고되셨을까?

목사 될 줄 알았던 신학생 남편, 제대후 세 아이들 생기면서 먹고 살 길 없어

막일에 국수장사부터 시작할 때, 그 낙망은 어찌하셨을까?

집 마당에 돼지우리를 들여 마흔 다섯 마리까지 키우시고, 엄동설한에 밤이

맞도록 개새끼를 열 다섯 마리씩 받아내시던 때.

잘못은 우리가 했는데도 오히려 당신이 ‘엄마 때문이라고, 엄마가 어빙이라 그

렇다고’. 그런 엄마가 싫어서 또 화를 내대면 그것도 미안하다고.

큰 아들 둘째 아들 막내 아들, 재수에 방황에 실패에 어느 한 가지에도 바람

잘 날 없던 시절, 홀로 바람막이가 되어 서 계시던 분.

자신을 위해서는 일 원 한 장 따순 물 한 방울도 아끼시면서, 자식들 위해서

는 그 무엇이라도 다 내어 주셨던 분.

집안에 어려움이 찾아와도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데 뭘 걱정해”, 눈물로 기도

로 길을 여시던 분.

어느 순간부터 정신줄을 조금씩 놓으시고, 마지막 큰 수술로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면서도, “주님 도와주세요” 기도하시던 분.

그 누구보다 범사에 감사하며 사셨음에도,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고 살았다”

고 마지막에 가슴 아파하시던 엄마.

신앙의 기운이 미미하던 최씨 집안을, 아무도 예수 믿지 않던 친정 김씨 집안

까지, 온 가문을 견고한 믿음의 반석 위에 세웠던 큰 나무.

엄마!

    
3.

어릴 때 유난히 병치레가 잦았던 내게, 형들이 흉볼세라 옷깃을 감추며 젖을

내 주시던 엄마. 팔순이 넘으신 때에도 흰머리 성성한 막내아들이 등 뒤에서

안고 젖을 만져도, “아휴, 아직도 애기여~” 하시며 가만히 손을 포개시던 분.

내 마음의 고향 청주 금천동에서, 열이 불덩이 같이 뜨겁던 어린 나를 끌어안

고 ‘아가, 장아’ 눈물로 밤을 지새우시던 분. 입병에 편도선에 밥을 못 넘기는

내게 한 숟가락이라도 먹일세라 씹어서 밀어 넣어 주시던 분. 학교 다녀와도

‘엄마’, 배고파도 자다가도 ‘엄마 엄마’, 살면서 얼마나 많이 불렀을까? 단 한

번 마다하지 않으시고 ‘오야 울 애기’ 하며 대답하시던 분.

엄마!

    
20대부터 시작된 내 서울생활, 세상 고민 짊어지고 이리저리 헤매던 골목마다

어김없이 서 계셨던 분. 백암산 철책 그 깊은 밤 달무리 속에서 둥시레 떠올

라 홀로움을 달래 주신 분. 내 이름이 없는 합격자 명단 앞에서, 수술실 그

정신없는 조명을 받으며 마지막으로 떠올린 얼굴, 마지막으로 부른 이름. 물

설은 강원도에서 목양의 짐에 축쳐진 어깨로 걸어갈 때면 어느새 따라붙어 도

닥여 주시던 분. 그렇게 내 인생의 순간순간 굽이굽이, 기쁠땐 나보다 더 좋아

춤추시고, 그 벼랑끝 주저앉아 무너지고 싶은 순간에는 버팀목이 되셨던 분.

엄마!

    
처음 내 귓가에 성경을 읽어 주시고,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신

분,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참되고 바른 것이 무엇인지를, 인생

의 어려운 순간에도 결코 주저앉지 않고 이겨 내는 길을, 말로 몸으로 본을

보여 주신 분. 하나님 사랑, 부모님 사랑, 형제 사랑, 목회자 사랑, 내게 사랑

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신 분. 인생의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죽어도 천국 가

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사신 분.

엄마!

    
4.

그런 엄마가 이젠 하늘로 가십니다. 그 고운 찬송소리, 읽어 주시던 성경구절,

울며 기도하시던 목소리가 내 귓가에 여전한데, 우리에게 예수님 역할을 하도

록 잠시 보내 주신 천사가 떠나십니다. 부부의 연을 맺고 65년 하세월을 부창

부수하며 사신 아버지, 마지막 관에 손을 얹고 “김옥희 권사 천국에서 만납시

다” 오열하던 지아비를 홀 남겨 두고, 제 몸보다 더 사랑하셨던 세 아들들, 며

느리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던 손주들을 뒤로 하고, 이 세상 소풍 끝내고

하늘로 오르십니다. 남편 장로가, 아들 장로 목사들이 고인을 너무 사랑하니

하나님이 질투 하셨을까? 가장 아름다운 영혼으로 하늘 정원을 수놓아야 한다

시기에, 평생 불효만 하고 마지막 임종도 지키지 못한 막내 아들이, 차마 보낼

수 없는 엄마를, 벌써부터 그리운 엄마를 보내 드리는 시간.

    
이제 다시는, 고향집에 전화 드리고는 “엄마 엄마 맘맘마~” 하며 어리광 부릴

수 없겠지요. “응~ 울 애기, 막내 목사님”,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목소리

다시 들을 수 없겠지요. 이제 다시는, 어린 손주들부터 환갑의 아들들에까지,

속주머니에 여퉈두신 그 꼬깃한 돈을 받을 수 없겠지요. 그 주름지지만 고운

얼굴을, 거칠지만 따스한 그 손을, 짜브라 붙었지만 사랑의 그 젖가슴을 만질

수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겠지요.

    
5.

아파트 문을 나서는데 늘 뵙던 아래층 할머니께서 의자에 앉아 계십니다. 차

에서 내려 인사를 드렸습니다.
“할머니 날씨가 차요 들어가셔요”.

늘 보던 목사이지만, 때 아닌(?) 인사에 얼굴이 환해 지십니다.

“할머니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목사님, 아흔 서이나 됐시우”.

엄마보다 여덟 살이나 위이신데, 아직도 눈을 껌벅이며 대답하시는데.

그렇게 가는 곳마다 엄마가 보입니다. 가는 곳마다 엄마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슬프고 또 감사입니다. 이제 고향에 가야만 만날 수 있던 엄마를 어디

에서나 만날 수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들을 수는 없지만, 이제

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 따라 살겠습니다.

    
사랑하는 엄마. 세상 무거웠던 짐들은 다 털어 버리고 훨훨 하늘로 오르세요.

평생의 그 믿음으로 천국문을 활짝 여세요. 목사 아들도 주님이 약속하신 그

곳이 어디인지 잘 몰라요. 그 어느 하늘 아래 있겠지요. 거기에서 기다리고 계

셔요. 훗날 아버지와 우리도 먼저 가신 그 강 건너가, 형들과 앞다투어 엄마

품에 안겨 그간의 못다한 정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울 터이니. (그때 볼 거에

요. 누굴 젤 먼저 안아 주시는지. 내가 막내니까...)

    
고맙습니다 엄마. 우리에게 큰 사랑을 주셔서

사랑해요 엄마. 평생을 우리 곁에 계셔 주셔서

행복했습니다. 먹뱅이에서 석교동에서 탑동에서 금천동에서 엄마와 함께 한

날들이, 아버지와 두 형님들 온 가족들이 당신과 함께 했던 이생의 날들이.

    
6.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

    
-정호승-

잘 자라 우리 엄마 

할미꽃처럼

당신이 잠재우던 아들 품에 안겨

장독 위에 내리던

함박눈처럼

    
잘 자라 우리 엄마 

산 그림자처럼

산 그림자 속에 잠든

산새들처럼

이 아들이 엄마 뒤를 따라 갈 때까지

    
잘 자라 우리 엄마 

아기처럼

엄마 품에 안겨 자던 예쁜 아기의

저절로 벗겨진

꽃신 발처럼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