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의 성탄

• 가장 불행한 것

어릴 때 가끔 엄마가 밤인데도 집에 안 계실 때가 있었습니다. 백이면 백 교

회 가신 것이지요. 퇴근해서 집에 오신 아버지는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십니다.

쏜살 같이 달려 나가 인사하는 세 아들들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리고는 꼭

이 말씀 하셨지요. “아무두 음냐?”.

아니 이렇게 산만한 아들 셋이 마루를 꽉 채워서 서 있는데 아무도 없다니요,

그럼 우린 뭐여요, 유령이어요? 예. 엄마가 안 계신다는 것이지요. 엄마가 안

계시면 아무도 없는 듯 집이 텅 비었습니다.

    
얼마 전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으십니다.

“세상에 가장 불행한 게, 상대가 없는 거다”.

말할 상대, 함께 길을 가는 상대 말입니다. 엄마와 결혼하셔서 65년 동안 두

분이 항상 같이 계셨으니 오죽하시겠어요. 저녁에 전화 드리면 하루 종일 쌓

아 두셨던 말들을 쏟아 내시는데, 들어 드리는 것도 가끔은 고역입니다. 누군

가와 함께 있어서 말을 주고받고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참으로 귀하고

소중합니다.

    
어느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교회에 너무나 속을 썩이는 성도가 있었다네요. 얼

마나 힘든지 차라리 교회에 안 왔으면 하는 마음까지 들더라는 거예요. 그런

데 그 말을 듣고 있던 옆의 목사님 왈,

“나는 그렇게 속 끓이는 성도라도 있었으면 좋겠네”.

개척한 지 3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가족끼리만 예배드리는 목사님. 얼마나 사

람이 그리워요. 골칫덩이 성도가 있다고 푸념하던 목사님이 사뭇 부끄러웠다

는 것입니다.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 홀로인 인생

딴은 홀로인 인생입니다. 수술실에 들어갈 때, 부모 형제 손을 놓고 훈련소로

들어갈 때, 남편 손을 놓고 분만실로 들어갈 때, 어쩔 수 없는 혼자입니다. 무

엇보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둘러 선 가족들을 뒤로 하고 이 땅을 떠날 때 우

리는 분명 혼자일 것입니다.

비단 이렇게 특별한 때뿐만이 아니라, 인생은 날마다 공허하고 날마다 거부당

하고 날마다 벽을 쌓으며 홀로의 인생을 삽니다. 그날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

힌 여인, 그렇게 외로웠을 것입니다. 뽕나무에 올라간 외톨이 삭개오가, 사람

들을 피해 물 길러 나왔던 수가성 여인이... 그러고 보니 예수님을 만났던 이

들은 모두 외로웠던 홀로의 인생들입니다.

    
어느 교회 청년 둘이 결혼을 했어요. 아버지같이 좋으신 목사님이 주례를 했

는데 이게 웬걸요. 결혼 후에 목사님이 밤마다 전화에 시달립니다. 신랑이 밤

늦게 퇴근을 하고 전화도 안 되는 일을 합니다. 신부가 얼마나 겁이 많은 지

밤만 되면 혼자 무서워요. 주례 선 게 죄인지라, 목사님께 전화를 해대는 것이

에요.

“목사님, 무서워요”.

“그럼 TV라도 켜지”.

강도가 들어오는데 듣지 못하면 어떡하나 싶어 TV도 못켜겠다나요. 목사님이

몇 개월간 시달렸습니다. 주례는 괜히 서 가지고 서리...(?)

그런데 한 1년쯤 지났는데 어느 순간부터 전화가 안 옵니다. 잘 됐다 싶으면

서도 늘 오던 전화가 안 오니까 목사님이 살짝 걱정이 됩니다. 전화했어요. 왜

일까? 아기가 태어난 것입니다. 아이랑 있으니 안 무섭대요.

신기하지요. 강도가 들어오면 아이가 막아 주나? 아이 뒤에 숨을 건가? 그런

데 갓난아이라도 함께 있으니 무서운 게 덜했다는 거예요. 사람은 누군가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로를 얻습니다. 많은 말보다 그냥 곁에 있어 주

는 사람 자체가 큰 선물인 것이지요.

    
• 진정한 사랑

10여 년 전 성도들과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갔을 때, 예루살렘에 있는 야드 바

셈(Yad Vashem) 박물관을 들렀습니다. 야드는 ‘기억’, 바셈은 ‘이름’이라는

뜻입니다. 2차 대전 중 나치의 학살로 죽어간 유대인들을 기억하고자 세운 기

념관입니다. 입구에 새겨진 글귀가 아직도 생생하지요.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말라”(Forgive, but remember)

그런데 박물관 뒤편에 특별한 동상이 있었으니, 아이들을 끌어안고 있는 어른

의 청동 조형물입니다. <코르작과 게토의 어린이들'(Korzak und die Kinder

des Getto)>. 코르작(J. Korczak)은 폴란드의 초등학교 선생님이자 동화작가

입니다. 유대인이 아니라 폴란드인이었지요. 독일군이 폴란드의 유대인 초등학

교에 들이 닥치자, 교실에서 공부하던 아이들이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떱니다.

그때 코르작 선생님은 아이들을 양팔로 감싸 안으며 내놓지 않았습니다. 코르

작이 저명한 선생님임을 알아 챈 독일군인들이 말합니다.

“당신은 유대인이 아니니 물러나시고 유대인 아이들만 내 놓으시오!”

그러나 선생님은 필사적으로 군인들에게 저항을 합니다. 가스실로 향하는 트

럭에 아이들과 함께 올라탑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들을 그냥 보낼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급기야 가스실까지 함께 들어가 죽음 앞의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말합니다. "선생님, 마음이 편해졌어요.

선생님이 함께 해주시니 좋아요. 하나님이 지켜 주시니 더는 두렵지 않아요".

1942년 8월 7일, 코르작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가스실에서 죽습니다. 진정

한 사랑은 끝까지 함께 하는 것입니다.

    
• 임마누엘

그러나 그 사랑조차 거기까지입니다. 죽는 순간까지. 인간은 더 이상 같이 할

수 없습니다. 죽음이후까지 동행하는 사랑, 그것이 영원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에서 이 말씀이 가장 좋습니다. 임마누엘 עמּנוּא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세상끝날까지 함께 하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아직 온전한 복음은 아닙니

다. 우주 저 밖에서 팔짱 끼고 지켜보시는 하나님이라면? 혹은 나와 아무 상

관이 없는 하나님이시라면? 소용없습니다. 오히려 무섭고 두려운 하나님일 뿐

이겠지요.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나를 돌보시고 지켜 주신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위하시니

그것이 놀라운 소식,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보내신 날, 성탄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이 땅에 오신 성탄과 십자가는 하나님께 이르는 길입니다.

주님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삶이 가능해졌습니다.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

    
• 임마누엘의 성탄

BC8세기경, 망해가는 이스라엘이 탄식하지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가? 예루살렘 성전조차 무너져 가는 이 시대에”

그때 이사야 선지자가 대답합니다. 아니라,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시

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그들은 결국 임마누엘 하나님의 은총으로 포로에서 돌아와 무너진 성전을 회

복합니다.

    
800여년이 지나 다시 어두운 시대, 베들레헴에 양치던 목자들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가? 말라기 선지자 이후 소망 없이 사는 이 시대에”

그날 밤 하늘의 천사가 대답합니다. 아니라 메시야가 오신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너희와 함께 하심을 보여 주신다.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

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3)

그렇게 주께서 성탄으로 이 땅에 오시사 고치시고 싸매시고 바르게 하시고,

끝내 십자가를 지시사 만백성에게 구원과 평화의 길을 여십니다.

    
2천년이 지난 이 시대, 우리도 탄식하며 외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가? 아무 희망도 보이지 않는 이 코로나 시대에”

그 옛날 이사야 시대처럼, 유다땅 베들레헴 목자들처럼 절망의 시대를 살아가

는 우리들에게 이미 오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니라 하나님은 여전히 함께 하신다 임마누엘!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

으라”.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레가 임종하면서 한 말은 교회사에서 참으로 유명합니

다. 기력이 쇠해져서 말을 하기 어려운 순간,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이렇게

말하고 하나님 품에 안겼다지요.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

(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

    
주께서 저기 오십니다.

임마누엘의 소식을 전하시려고.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