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오디아, 그리스도의 향기 되어

• 그리운 그 냄새

<청주시 금천동 102-6번지>. 유년의 그 집은 언제나 제 마음의 고향입니다.

터덜터덜 키낮은 나무 대문에 들어서면 바로 변소가 있고 광이 붙어 있습니

다. 지금쯤이면 그 광 스레드 지붕에 고드름이 사열하듯 줄맞춰 달려 있습니

다. 저만치에는 고봉으로 푼 밥처럼 눈을 머리에 인 장독대가 있고. 맞은편에

는 수돗가, 얼어붙은 그 펌프에 뜨거운 마중물을 넣고 물질을 하면 땅 속 깊

은 물이 솟구쳐 나왔지요.

그 앞에 누워있는 마당은 제 놀이터였습니다. 혼자 구슬치기 딱지치기, 한국과

일본 야구 결승전도 열리고. 배트맨도 날라 다니고. 마당 가로질러 길게 늘어

져 있는 빨래줄. 이렇게 눈이 많이 온 후 해가 날라치면 빨래 너느라 바쁘신

어머니, 거꾸로 만세하며 옷들은 넌출지게 걸려 있고. 장난하느라 빨래를 얼굴

로 스쳐서 왔다 갔다, 그러다 옷을 떨어 뜨려 후지르면 엄마에게 실컷 쿠사리

맞습니다.

마당 한 가운데는 꽉 차게 자리 차지한 돼지우리. 한 칸은 마당에 있고 두 칸

은 길가쪽에 있어 담을 대신했고, 광에도 한 칸 들여 총 4칸이었습니다. 한겨

울 요맘때가 되면 온 식구가 집 뒤 논에 나가서 한 니야까(리어카) 잔뜩 짚단

을 실어 옵니다. 오양간에 두텁게 깔아 주면, 추운 겨울날 돼지들이 그래도 따

스하게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어떤 땐 한 서른 마리도 먹였는데요, 그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저야 막내라고 빈둥댔지만, 형들은 그 돼지 오양 치느라 고생

많이 했습니다. 그러면 온 몸에서 냄새가 진동을 했지요. 부엌에는 항상 돼지

밥을 삶아서 엄마는 정신이 없으십니다. 돼지밥 냄새는 또 어떻고요. 학교나

교회 가면 돼지 냄새 날까봐 창피했습니다. 어머니는 옷을 다 갈아 입으셔도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일명 ‘돼지 엄마’. 그래도 그 돼지 팔아서 삼형제 공부

시키는데 보태셨으니 고생 참 많이 하셨지요. 그때는 그렇게 싫었던 말이었는

데, 지금은 가끔 ‘돼지엄마’ 하며 고향에 전화합니다. 그때는 그렇게 싫었던

냄새였는데 지금은 한번 맡아 보고 싶은 그리운 냄새가 되었습니다.

• 사랑은 향기를 타고

우리가 살아가는 곳마다 냄새들로 가득합니다. 병원에 가면 약냄새가 코를 찌

르고 주유소에 가면 기름 냄새가 납니다. 식당에 가면 음식내, 절에 가면 향냄

새가 진동하지요. 젖을 잔뜩 먹고 방긋 웃는 갓난아이 아릿한 젖내음이 있고,

청년들에게는 아무 것도 안 뿌려도 싱그럽고 풋풋한 향기가 납니다. 지난 봄,

봄볕이 따순 어느 날에 교회 뜨락을 가득 채우던 라일락 향기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어릴 때는 소독차 냄새가 얼마나 좋았는지요, 속에 회충이 많아서

그렇다는데도 희뿌연 차꽁무니를 열심히 쫓아갔습니다. (아하, 그래서 서울에

그때 체루탄가스가 익숙했을까요?)

신학교에 들어와 기숙사 생활을 오래 하니 사생들은 냄새가 뱁니다. 짬밥냄새

비슷한. 얼마 전에 친구와 장신대에 가니 그때 건물은 남아 있는 것이 엘림(기

숙사) 뿐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변했지만 기숙사 그 특유의 냄새는 여전했

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바로 그 냄새, 잊고 있었던 그 퀘퀘한 냄새가

20년을 넘어 과거와 현재를 이어 주고 있었습니다.

아, 청주동산교회 그 옛날 마룻바닥 냄새를 어디서 맡을 수 있을까요.

청주 석교초등학교 현관에 그 독특한 냄새, 6학년 3반 칠판 백묵 냄새...

요즘 목양실 제 방에 무슨 냄새가 납니다. 개코(?)인 아내도 잘 구별하지 못하

는 냄새인데요, 석부작(石父作)에 풀냄새며 흙냄새입니다. 톡톡 치면 허브향이

나는 풀도 있습니다. “이번에 잘 못 키워 죽이면 나도 따라...”(?) 이런 마음으

로 애지중지 가꾸니 몇 달이 되었는데 아직도 잘 살아 있습니다. 그 녀석에게

서 나는 자연의 진한 냄새입니다. 아마 정성 때문이겠지요? 수시로 쳐다보며

물을 뿌리고 바닥에 흙은 마르지 않았는지 만져 주고, 그래서 저만 느끼는 냄

새가 석부작에게 있습니다. 사랑은 향기를 타고!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

-이해인-

어느 땐 바로 가까이 피어 있는 꽃들도

그냥 지나칠 때가 많은데,

이쪽에서 먼저 눈길을 주지 않으면

꽃들은 자주 향기로 먼저 말을 건네 오곤 합니다.

좋은 냄새든, 역겨운 냄새든 사람들도

그 인품만큼의 향기를 풍깁니다.

많은 말이나 요란한 소리 없이 고요한 향기로

먼저 말을 건네오는 꽃처럼 살 수 있다면,

이웃에게도 무거운 짐이 아닌

가벼운 향기를 전하며 한 세상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샤넬넘버5’의 향기

우리 교회는 들어오시면 어떤 냄새가 날까요. 본당엔 본당대로, 주방엔 주방대

로 조금씩 다른 냄새가 있을 것입니다. 올해는 유치부 숙원사업이었던 예배공

간을 마련해서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주방에서 나는 음식냄새로 예배와 공

과 진행하기에 큰 어려움이 있었잖아요.

여성들이 즐겨 쓰는 향수 ‘샤넬넘버5’는 장미꽃잎으로 만듭니다. 45kg의 꽃잎

을 가지고 겨우 28g의 향수가 만들어질 뿐인데요, 엄청난 장미꽃을 농축해서

만들기 때문에 한 방울만 떨어 뜨려도 종일 냄새가 향기롭습니다. 그래도 탐

탁지는 않지요. 인위적이니까요. 요즘은 일명, ‘아로마 요법’(aroma therapy)

라 해서 순수 자연식물에서 추출한 향기로 병을 치료하는 방법도 유행입니다.

내게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향긋한 냄새가 날까요? 통곡의 벽에서 보았던 종

교인들 냄새가 나진 않을까요? 혹 오래된 방향제처럼 아무 냄새도 없는 건 아

닙니까? ‘아무 것도 아니무니다’, 부담스런 화장의 갸루상(멘붕스쿨)처럼 서로

어긋나는 냄새만 나지는 않을까요. 생화 같은 조화가 많지만 조화는 꽃향기가

없습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 후보들에도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잖아요. 가짜는

가까이 갔을 때 향기가 없습니다.

언젠가 용문산에 간 적이 있습니다. 고즈넉한 늦가을 풍광이 좋았지요. 무엇보

다 천 년의 세월을 넘게 살아 온 은행나무가 유명합니다. 오랜 풍상(風霜)을

견디며 아직도 열매를 맺고 있는 나무, 그 앞에서 고개를 숙입니다. 그런데 가

까이 가보니 이상한 냄새가 났어요. 은행 열매에서 나는 그 역겨운 냄새였습

니다. 어린 나무든 고목이든 은행나무 열매는 좋지 않은 냄새를 풍깁니다. 다

른 짐승들의 접근을 막아서 열매를 보호하는 본능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고약한 냄새임에 틀림없습니다.

사람도 가까이 하면 냄새가 나게 되지요. 향기로운 냄새이든 그렇지 않은 냄

새이든 각각 배어 있는 냄새가 있습니다. 멀리서는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가

까운 거리에 들어오면 맡을 수 있습니다. ‘샤넬넘버5’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

다. 꼬부랑 노년이라도 살아 온 연륜에서 나오는 냄새, 그 사람의 인격과 성품

에서 나오는 내면의 향기 말입니다.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을 바라보며 예수께서 말씀하시지요.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

여 저를 기념하리라” (막14:9)

•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그러므로 수 년 혹은 수십 년 성전을 오르내렸어도 예수님 향기가 나지 않는

다면 서글픈 일입니다. 어쩌면 이 시대 교회들에게서 주의 향기를 맡기가 어

려워졌습니다. 교회세습이다 정치권력화다 신천지다, 온갖 악취만 나는 것은

아닌지요.

♫<그리스도의 향기>

“너는 그리스도의 향기라 너는 그리스도의 편지라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너를 통해 생명이 흘러가리 너를 통해 생명이 흘러가리”

생선을 싼 종이는 생선 비린내가 나고 꽃을 싼 종이는 꽃향기가 납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시다면 생명과 진리의 향기가 풍겨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향기(유오디아, ευωδια)를 내고 계십니까?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2:15)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