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죄와 사망에서 구원 받았

지요.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라(엡2:8). 그런데 구원 받은 성도가 할

일이 있으니 주님을 따라가는 일입니다. 본회퍼는 성도를 일컬어 ‘뒤따르는

자’(Nachfolge)라 합니다. 순종하는 믿음으로 주님을 뒤따르는 자라.

“신앙에 이르는 길은 그리스도의 부름에 대한 순종을 통과한다. 발걸음을 떼

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예수의 부름은 헛수고가 된다. 예수를 따

른다고 말하면서 예수가 부르는 이런 길을 가지 않는 모든 발걸음은 거짓된

광신이다... 오직 믿는 자만이 순종하고, 오직 순종하는 자만이 믿는다”

<나를 따르라>, 본회퍼, 60-61쪽 중에서

    
그런데 주님을 뒤따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자기를 부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막8:24). 주의

일을 할 때에도, 거룩하고자 몸부림 칠 때에도, 이 자기 부인(self denial)의

문제에 부딪힙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일 없이 참 제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합

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 앞을 지나다가 (마11:28절) 말씀을 보고 교회에 들어

갔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그런데 본당 정면에 이 말씀을 보고는 도망 나왔다는군요. “누

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8:24-25)

    
신앙생활하며 참 많이 듣고 고백하는 말씀이지요. ‘자기를 부인하라’. 무슨 뜻

일까요. 자기를 멸시하라? 금욕주의자가 되라? 갈망이나 열정을 없애고 살라?

예전에 신앙의 어르신들이 자주 하시던 말씀이지요. “벌레만도 못한 이 죄인

을...” 나를 비하(?) 할수록 겸손한 것이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라 여겼습니

다.

    
사실 현대사조는 ‘자기실현’입니다. self-realization. 자기 긍정, 자기 성취의

시대이지요. 맞습니다. 건강하고 긍정적인 자아를 갖지 않으면 불행합니다. 자

기를 사랑하고 용납하는 자존감(self-esteem)이 높아야 합니다. 성경은 한 인

간의 가치를 얼마나 강조하는지요. 사람이 보기에는 아무리 못났어도 주님께

는 너무나 귀한 존재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주고 ‘자기’ 목숨을 잃으

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막9:36). ‘자기’라는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씀하

지요. 우리는 하나님 앞에 참으로 사랑받는 아들과 딸들입니다

• 자기 부인이란?

그렇다면 ‘자기 부인’이란 무엇인가? ‘부인하다’는 헬라어로 ‘아파르네오마이’

(άπαρνεομαι)인데, ‘상관이 없다, 인연을 끊다’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십자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할 때도 ‘아파르네오마이’가 쓰였습니다. 주님과는 아무 상

관없는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나는 나와

상관없다, 나와 인연을 끊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를 끊고 살까? 그동안 나를 위해 분투하며 살아 왔는데, 내

가 나를 끊고 부인하면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라는 말이에요? 여기서

‘나’란 누구인가, 끊어야 할 ‘나’는 도대체 무엇인지 잘 구분해야 합니다.우리

안에는 두 개의 ‘나’가 있습니다. 먼저는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나’입니다. 아

담 안에서 물려받은 본성이지요. 그러나 또 다른 ‘나’가 있으니 예수 그리스도

를 믿고 새로워진 ‘나’입니다. 그것을 옛사람과 새사람으로 말하지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

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4:22-24).

옛 사람의 ‘나’는 철저하게 육체적이요 세상적이며 마귀적입니다.

(갈5:19절-21절)“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

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

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이 옛 사람의 ‘나’와 새 사람의 ‘나’가 내 안에 공존합니다. 서로 갈등하며 싸

웁니다. 사도 바울은 (롬7장)에서 이것을 ‘죄의 법’과 ‘하나님의 법’으로 말하

지요.

“...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

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7:21-25)

    
한 지붕 밑에서 살 수 없는 판이한 두 개의 법이 내 안에 공존합니다. 두 개

의 ‘나’이며 두 개의 법입니다. 새 사람 하나님의 법이 작동할 때 나는 거룩한

일을 행하지만, 옛 사람 죄의 법이 지배할 때 악을 행합니다. 이렇듯 우리의

마음에 선과 악이 상존하기 때문에 고민하고 갈등합니다. 이런 말이 있어요. “

죄는 손님으로 들어와서 주인으로 들어 앉는다". 이런 옛 사람의 ‘나’는 당연

히 주님을 따라가기 싫어합니다. 예수 믿어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새 사람이

되었지만, 이 옛 사람의 내가 불쑥불쑥 튀어 나옵니다. 이 옛 사람의 나를 버

리는 일,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입니다.

• 주님을 따르는 첫 걸음  
우리 신앙생활 언제 어려워요? “너무 핍박이 쎄서? 사자굴 속에 들어가야 돼

서? 봉사하는 일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그렇지 않지요. 사실은 자기

를 부인하지 못해서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아니 내가 살아 있

어요. 그래서 마음 문이 닫혀요, 마귀가 틈을 탑니다. 시험에 듭니다. 사명이

고 뭐고 내팽개쳐요. 그런 ‘나’를 부인하라, 그 자리에 예수님을 모시라, 내 생

각을 버리고 예수님 생각을, 내 승질을 버리고 예수님 성품을, 내 방식을 버리

고 예수님 방식을, 내 욕심욕망을 버리고 예수님 꿈과 비전을. 그리할 때 주님

을 따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됩니다.

    
C.S. 루이스가 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대장 마귀 스

크루테이프가 졸개 마귀 조카 웜우드에게 말합니다. “얘, 크리스천이 언제 제

일 강한 줄 아니?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니라 생각할 때야. 그러므로 크리스천

마음속에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심어 주라. 자기 부

인을 못하도록 하라. 그러면 우리가 이긴다”.

    
그러므로 자기 부인은 ‘누가 나의 주인인가?’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내가 아니

라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자기 부인은 ‘우선순위가 무엇인가?’와 연관됩니

다. 내가 아니라 주님이 먼저입니다. 자기 부인은 ‘어떻게 사느냐?’와 연관됩

니다. 세상적인 방식이 아니라 십자가의 방식입니다. 자기 부인은 ‘무엇이 중

심인가?’와 연관됩니다. ‘내’가 내 인생의 중심이 아니라 주께서 중심이 되십

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일, 주님을 따르기 위한 첫 걸음입니다.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