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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손은 어떤 손일까?
이름 최현장
작성일자 2021-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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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은 어떤 손일까?>

    
이마에 손을 얹을 때

어릴 적 한 겨울에, 학교에서 몹시 아파 집에 왔는데 엄마가 계시지 않았습니

. 혼자 누워서 끙끙 앓았지요. 얼굴이 벌거니 열은 오르고 천장이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한참이 지난 후에 집에 오신 엄마, 깜짝 놀라시면서 서둘러 하시

는 일이 있으니 내 이마에 손을 얹으십니다. 순간, 참았던 눈물이 터져서 엉엉

웁니다. 그 손은 밖에서 들어오셔서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내 뜨거운 이마보

다 더 따스한 손이셨습니다.

. 엄마가 의사이셨지요. 이마에 그 손을 얹으실 때, 세상에는 그 손과 내 이

마만이 존재합니다. 온 우주는 정지하고 나는 순한 양이 됩니다. 엑스레이 앞

에서처럼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때론 눈을 지그시 감고 몸을 내맡기며 엄마

의 선고를 기다리지요. 그 선고에 따라 나는 환자가 되기도 하고 괜찮기도 했

습니다. 열이 있을 때는 머리에, 배가 아프면 배 위에, 그 손을 얹고 쓸면서

기도해 주시면 그 품에서 스르르 잠이 들곤 했지요. 한참을 자다 깨면 신기하

게도 열이 내리고 아픈 배가 말끔해져 있었습니다. 실로 엄마 손은 약손이라

는 말, 과학적인 설명을 다는 사람은 어리석지요. 사랑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람의 이마에 손을 얹을 때는 거룩한 순간입니다. 3,4초 동안에

감촉과 체온, 전해지는 마음. 두터운 얼음 밑을 유유히 흐르는 강물의 시간이

, 모든 장벽을 허무는 생명과 평화의 시간입니다.

이제는 그 엄마의 손이 아내의 손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내가 내 머리에 손을

짚을 때, 나는 한없이 그 옛날로 돌아가 어린아이가 됩니다. 세월이 지나면 아

내 손대신 아이들 손이 얹히겠지요. 엄마에게서 아내로 아내에게서 아이들로,

사랑은 그렇게 이어지며, 인생을 살리고 무너지는 세상을 지탱해 갈 것입니다.

이마에 손을 얹는 일, 사랑을 얹는 일이라. 어느 시인은 이것이 이마의 크기와

손바닥의 크기가 비슷한 이유라고 읊었습니다. “타인의 손에 이마를 맡기고

있을 때 /나는 조금 선량해지는 것 같아... 이마의 크기가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허은실, <이마> 중에서).

    
손을 잡지 못하는 세상

우리는 만나면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아줌으로 반가운 마음을 표하지요.

로 죽일 듯 피 흘리며 싸우는 이종격투기(UFC) 선수들이라도, 경기가 끝나면

손을 잡고 안아 줄 때 감동이 됩니다. 연인들의 사랑은 손잡는 것에서 싹이

트지요. 손만 잡아도 마음이 어느 만큼은 열린 것입니다. 처음 아내의 손을 잡

았을 때의 설레임, 쉬 잊히지 않습니다. 손을 잡는 것에서 시작된 그 사랑이

영글어져 장래를 약속할 때도, 손을 잡고 새끼손가락을 걸지요. 결혼식 날,

딩마치를 울리며 둘이 행진할 때도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갑니다. 그렇게 악수

하는 손, 손가락을 거는 손, 이마를 짚어 주는 손, 헤어질 때 흔드는 손. 손처

럼 많은 말을 하고 많은 일을 하는 몸의 지체가 또 있을까!

    
그런데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서 아쉬운 일 중 하나는, 서로의 손을 잡지 못하

는 것입니다. 손이 전염균의 온상이어서 수 천 년 인류의 습관인 악수가 종말

을 고한 것이지요. 처음엔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가 머쓱하게 다시 집어

넣곤 했지요. (dap)이라고, 살짝 주먹을 부딪치는 인사를 하지만 좀 어색합

니다. 뭔가 가볍다 할 지, 예의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손 보다는 깍

듯한 목 인사로 대신합니다. 목이든 주먹이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텅 빈 마

음을 녹일 따스한 마음, 내 이마에 얹어 줄 사랑의 손길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손을 잡아 주고 싶은 이들이 많습니다. 취업과 결혼이 더욱 어

려워진 청년들, 한숨으로 가득한 소상공인들, 홀로 계신 어르신들, 크고 작은

병에 걸린 환우들. 혹시 4월이면 떠오는 이런 손은 희미해지셨나요? 천안함에

서 죽어간 50여명의 장병들, 300여명의 생떼 같은 아이들을 보낸 세월호 유가

족들. 마지막 그 손을 잡아 주지 못한 미안함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때입니다. 1층 로비에 사람들이 많이 몰

리는 곳이 있으니, 밀로의 비너스 상입니다. 모나리자 그림과 함께 루브르 박

물관의 얼굴이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상이지요. 2천년이 훨씬 넘은 조

각상인데도 살아 있는 듯한 그 얼굴이며 잘록한 허리, 나신(裸身)의 가슴 볼륨

(?). 옆에 아내가 있는 줄도 모르고 그 여자에게 푹 빠져 연신 사진을 찍어 댔

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멋진 여인이 살아온다고 해도 나는 싫습니다. 아내 때

문에? 아니요. 아시다시피 그 여인에겐 없는 게 있잖아요? 안아 줄 두 손,

!

    
거룩한 만짐(Holy touch)

그런데 아무리 보드라운 사람의 손이라 할지라도 오래 가지 못합니다. 따스함

은 점점 차가워지고, 부드러움은 쭈글쭈글해 집니다. 때가 되면 힘이 빠져서

더 이상 안아 줄 수도, 만져 줄 수도 없는 손이 됩니다. 마지막에 파킨슨병에

걸리신 엄마의 그 떨리는 손을 잡아 드리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리고 마침내 그 손조차 잡지 못할 때가 옵니다. 사람의 손은 거기까지인 것을.

마음으로밖에 느낄 수 없는 때가 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영원한 손을 바라봅니다. 손을 잡을 수 없는 세상, 백 년도 잡

지 못할 손. 그렇기에 반드시 잡아야 할 손이 있으니 주님의 손입니다. 예수님

은 이 땅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도 손을 내미시고 잡아 주셨습니다. 특히 부정

하다고 여기는 이들, 한센씨병을 비롯해 온갖 병자들을 가까이 하셨지요.

해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4:40)

    
이 말씀을 볼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지지요.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생의 소망이 없는 이들입니다. 나병환자, 중풍병자, 앉은뱅이, 진물 고름이 뚝

뚝 떨어져서 죽어가는 사람들, 냄새나는 이들입니다. 옮을까봐 부모형제도 가

까이 하지 않는 사람들, ‘그 병은 죄로 인해 받는 벌이라’, 율법에 부정하다는

이유 때문에 손끝이라도 달까 멀리 했습니다. 저들에겐 먼저 약이 아니라 손

이 필요했지요. 어릴 적 엄마의 손 같은 따스한 손 말입니다. “많은 사랑은 혀

끝에 있고 참사랑은 손끝에 있다하지요. 그래서 주님은 말로만이 아니라 그

손으로 저들을 만져 주셨습니다.

    
병자들 뿐만이 아니지요. 세리와 죄인들, 버림받고 소외된 이들과 스스럼없이

만나시고 저들을 만져 주셨습니다. 바람을 보고 두려워 물에 빠진 베드로에게

즉시로 손을 내미셔서 건지셨습니다. 그 손은 축복의 손이어서 하늘을 우러러

손을 들고축사하시자 오병이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기신 섬김의 손이셨고, 성전에서 장사를 하며 이득을 챙기는 자들의 좌판을

둘러 엎으신 정의의 손이셨습니다. 무엇보다 주님의 손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원의 손입니다. 그 손을 잡은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운 인

생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실로 거룩한 만짐’(Holy touch) 이시라.

    
당신의 손이 길을 만지니

누워 있는 길이 일어서는 길이 되네.

당신의 슬픔이 살을 만지니

머뭇대는 슬픔의 살이 달리는 기쁨의 살이 되네.

, 당신이 죽음을 만지니

천지에 일어서는 뿌리들의 뼈.

(강은교, '당신의 손' 중에서)

    
주님 닮은 손이 되고자

어제 교회에서 봉사부 중심으로 김치를 담갔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교회 김

치를 먹고 싶다 하셨대요. 지금은 쉬고 있지만, <사랑의 국수> 때 드시던 김

치 생각이 아마도 나셨던 것 같습니다. 몇몇 분들 중심으로 김치를 담가서 나

눠 드렸습니다. 물론 요즘 김치 못 먹고 사는 시대는 아니지요. 김치를 전해

주는 다른 단체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래도 교회에서 담근 김치가 전해질 때,

주님의 사랑이 전해지는 것이리라.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 오시지요?”

아니에요. 불편해 하실까봐

“(그래 맞다, 그게 옳은 일이지)”

두 세 개씩 김치 봉다리(?)를 들고 교회 문을 나서시는 분들 손이 참 아름답

게 보였습니다. 그 옛날 갈릴리의 주님을 닮은 손이어라.

    
내 손은 어떤 손일까?

밀어내는 손일까? 보듬어 주는 손일까?

주먹 쥔 손일까? 연결하는 손일까?

움켜 쥔 손일까? 나눠주는 손일까?

뿔이 나서 어색하게 손을 내린 채 서 있는 철부지 손은 아닐까?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11:21)

    
/사랑으로 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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