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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프라이팬을 바꾸세요
이름 최현장
작성일자 2021-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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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팬을 바꾸세요


공이 크게 보이는 날

운동을 하다 보면 공이 크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 날은 되는 날입니다.

구 공이 크게 보이면 홈런 치는 날이래요. 축구 문지기가 공이 크게 보이면

한 골도 주지 않는 철벽이 됩니다. 탁구도 마찬가지이에요. 공이 크게 보이는

날이 있습니다. 그 날은 서브 미스도 하지 않고 드라이브 회전도 잘 먹힙니다.

안 되는 날에는 자꾸만 실수해요. 공이 작아 보여서 잘 맞추지 못하고 맞춰도

두껍지 않아 회전이 긁히지 않습니다. 공이 제맘대로 커졌다 작아진다? 아니

지요. 보는 이가 문제입니다. 공이 크게 보이는 날, 이기는 날!

    
농구도 그렇다고 해요. 농구공이 다른 운동에 비해 좀 크잖아요. 그 커다란 공

’(Rim)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 신기합니다. (바스켓을 이 아니라

이라 합니다). 그것도 3점 슛. 골대까지 6.75m, 바닥에서 림까지 3.05m.

먼 위치에서 저 높은 곳의 작은 바스켓에, 지름이 24cm나 되는 큰 공을 넣는

것이 너무나 어려워 보입니다. 그런데 농구하는 분들 말을 들어 보면, 림이 생

각 보다 크다고 해요. 림 위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분명해 집니다. 아래에서

볼 때는 공이 커서 림에 꽉 끼어서 골인 되는 것 같지만, 위에서 보면 림에

들어가는 공이 무슨 야구 공 정도 밖에 되지 않아 보입니다. 실제로 림의 지

름이 45cm이니 공의 거의 두 배입니다. “바스켓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

’. 위에서 보면 골 넣기가, ‘쉽다’!”

    
우리 믿음도 그리하지 않을까? 공이 크게 보일 때도, 작게 보일 때도 있듯,

하나님도 크게 보이다가 작게도 보입니다. ‘하나님문제는 서로 반비례하

며 다가오지요. 신앙이 좋아서 하나님이 크게 보이면 삶의 문제는 작아집니다.

반대로 문제가 커 보일 때면 하나님은 왜소해 지지요. 아래에서는 림(바스켓)

이 작아 보이지만 위에서 보면 크듯, 내가 땅에서 볼 때는 골을 넣기 어려운

문제로 보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믿음으로 보면 골을 넣기에 충분히 크고 쉬

운 문제가 아닐까? 공도 림도 크기는 그대로이지만 보는 장소, 보는 눈이 문

제입니다.

   
내 하나님은 너무 작아서

그런 의미에서 J. B. 필립스의 책 <당신의 하나님은 너무 작다>는 큰 도전을

줍니다. Your God is Too Small.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긴 하는데 너무 작

습니다. 우주만물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지요. 우리가 사는 지구만

해도 너무 커서 이해할 수 없는데, 우주는 상상할 수 없지요. 그 우주 안에서

지구는 그저 모래알에 불과합니다. 그 지구 안에 한 점도 안 되는 내 생각 지

식 경험이 그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 생각과 경험에

갇혀 계신다면, 아무 힘도 능력도 나타내지 못할 것입니다.

너희는 하늘을 바라보아라! 누가 이 모든 별들을 만들었느냐? 여호와께서 별

무리를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 이끌어내시며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다 헤아리

고 계시니 그의 능력이 크시므로 그 중에 하나도 빠진 것이 없다”(40:26

대인의 성경).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너무 작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스스로 메뚜기 같다

고 두려워 하는 자와 저들은 우리 밥이라고 눈을 부라리는 자가 있다면,

느 쪽에 역사가 일어날까요? 메뚜기처럼 작아진 신앙, 그 안에서 작아지신 하

나님은 그 만큼만 역사하실 것입니다.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크신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그

리스도인들의 문제이다... 네 인생의 크기는 네가 믿는 하나님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당신의 하나님은 너무 작다> 중에서)

    
윌버 리스(Wilbur Rees)의 시는 어쩜 그리 우리 마음을 잘 표현했는지요.

 

<나는 3달러어치만 하나님을 사고 싶습니다 꼭>

(I Would Like To Buy Three Dollars Worth of God, Please).

나는 주님의 작은 일부만을 사고 싶습니다. 내 영혼을 깨뜨리지 않을 정도만.

수면에 방해 받지 않을 만큼만. 내 인생이 사로잡히지 않을 만큼만. 따뜻한

우유 한 잔 만큼이면 됩니다. 내 죄책감을 조금 누그러뜨릴 만큼이면.

나는 3달러어치만 하나님을 사고 싶습니다. 호주머니에 넣을 만큼의 사랑이면

충분합니다. 흑인을 사랑하도록 만들 정도로, 혹은 이민자들과 사탕무우를 주

우러 다니게 할 정도라면 곤란합니다. 내 마음을 바꾸지 않아도 될 정도만.

시간이 날 때 교회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만. 햇볕을 받으며 낮잠을 즐

길 수 있을 정도면 됩니다. 나는 변화가 아니라 황홀경을 원합니다. 거듭나지

않고, 그냥 모태에서 온기를 즐기며 지내고 싶습니다.

나는 영원의 2킬로만 사서 종이 봉지에 담아들고 싶습니다. 그 이상을 사야

한다면, 무르고 돈을 되돌려 받겠습니다.

나는 3달러어치만 하나님을 사고 싶습니다 꼭. 그 중 일부는 궂은 날을 위해

숨겨 두렵니다. 사람들이 알아차릴 정도로 내 안에 심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

도록. 어떤 책임도 느끼지 않을 만큼만. 사람들이 나를 보고 괜찮은 사람이라

고 여길 정도만. 이렇게 3달러어치만 하나님을 살 수는 없을까요? 꼭이요


하나님을 크게 보라

그래서 우리는 예배의 자리를 찾습니다. 예배는 망원경과 같아서 멀리 계신

하나님을 가까이 보게 합니다. 말씀은 현미경같아서 작디작던 하나님을 크

게 보도록 합니다. 기도는 확성기여서 하나님의 음성을 크게 들을 수 있습니

.

문제를 끌어안고 문제를 묵상하면 문제가 커집니다. 하나님은 점점 보이지 않

지요. 그러나 예배를 통해,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고 묵상하면

하나님이 점점 크게 보입니다.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깁니다. 두려움은 사라지고 문제는 점점 작아져서 이길 수 있게 됩

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누가 크냐?’의 싸움입니다. 하나님이 크냐? 문제가 크냐? 믿

음이란 하나님을 크게 보고 문제를 작게 보는 일이지요. 하나님의 크기가 믿

음을 결정합니다. 신앙의 초보 때는 하나님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점점 신앙

이 더해지면서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하지요. 그리고 신앙이 깊어질수록 점점

하나님이 크게 보입니다. 믿음이 좋다는 것은, 문제를 크게 보는 눈에서 하나

님을 크게 보는 눈으로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이 크면 능력을 일으키지만 문

제가 크면 움추러 들어 메뚜기가 됩니다.

    
성경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이지요. 문제가 왔을 때 그 문제 보다 하나님을

크게 본 사람들 이야기.

거대한 장수 골리앗 앞에서 이스라엘이 절망합니다. “어떻게 저리 큰 골리앗

을 맞출 수 있나”(too big to hit). 그러나 다윗의 생각은 달랐지요. too big

to miss. “어떻게 저리 큰 골리앗을 맞추지 못할 수 있나다윗이 만군의 하

나님을 크게 보는 믿음으로 나아가니 물맷돌로도 골리앗을 눕힐 수 있었습니

.

난공불락의 성 여리고 앞에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실망합니다. 더욱이 성

을 한 바퀴씩 돌라는 명령은 상식 밖이었지요. 그런데 저들은 여리고 성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순종했습니다. 성을 한 바퀴씩 돌 때마다 그렇게 커

보이던 성은 점점 작아져 보였을 것입니다. 작아지고 더 작아진 여리고성,

내 여리고가 무너졌습니다. 무너진 것은 기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크게 보고

여리고성을 작게 본 믿음의 당연한 결과이라.

이스라엘이 앗수르 산헤립 185,000명의 침공에 두려워 떨고 있을 때 히스기

야 왕은 이러한 말로 격려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대하32:7)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 바벨론 이국 땅에서 창문 열고

기도하던 다니엘, 유라굴로 광풍을 헤치고 세계의 심장 로마로 향하던 사도

바울, 이들 모두는 문제 보다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갔던 믿음의 선진

들입니다.

    
프라이팬을 바꾸세요.

어떤 친구 둘이 바다낚시를 갔대요. 고기가 얼마나 많은지 낚시를 던지는 즉

시 고기가 물었지요. 그런데 한 친구가 이상합니다. 고기를 그리 많이 잡는데

큰 물고기는 살려 주고, 작은 물고기만 통에 담는 것입니다. 옆의 친구가 묻습

니다. “아니 큰 고기를 취하고 작은 고기를 놓아 줘야지, 자네는 왜 반대로 하

는가?” 그러자 그 친구가 궁색하게 말합니다. “응 별거 아니야. 우리 집에 프

라이팬이 작은 것 밖에 없거든”.

(맥스 루카도. <짐을 버리고 길을 묻다> 중에서)

    
우리 믿음이 이렇지 않을까?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주셨는데 준비한 그릇이

너무 작아서 담을 수가 없는 것은 아닌가? 은혜를 담을 믿음의 그릇은 컵처럼

작고, 문제를 바라보는 눈은 함지박만 하게 큰 것은 아닌가?

오늘 당장 프라이팬을 바꾸십시오.

    
/사랑으로 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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