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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정, 추억의 박물관
이름 최현장
작성일자 202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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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추억의 박물관


향수1

저는 다른 친구들 보다 유난히 향수(鄕愁)가 많습니다. 지나온 옛 것을 추억하

는 그리움, nostalgia 말입니다. 고향집에 대한 향수, 예전에 섬기던 교회에

대한 추억,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 점점 나이 들면서 더해집니다. 기억 속에

곱게 저장되어 있던 옛날 일들을 자주 소환합니다.

    
청주 고향에 가면 석교 초등학교에 가봅니다. 그 때의 자취가 대부분 사라졌

지요. 그렇게 컸던 운동장이었는데, 지금은 참 아담해 졌습니다. 그래도 이리

저리 둘러보며 그때로 돌아가 봅니다. 모태로부터 부모님과 다녔던 <청주동산

교회>에도 가보지요. 그때 건물들은 다 사라졌지만, 촌극이며 캠프화이어며 등

나무 아래며, 그 자리에 서성이며 그때 일들을 기억해 보지요. 어릴 때 살던

금천동 집은 길이 나서 없어졌지만, 고등학교 때 지은 집은 그대로입니다.

른 분이 살고 있는데 인사하고 들어가서는 마당을 둘러 보곤 합니다.

    
40여년을 뛰어 넘어 지금 우리 사는 봉산동이 정겨운 것은, 옛날 고향의 정취

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맨 땅의 골목길, 간판도 희미한 구멍가게, 갈라진

담벼락, 구부정하신 어르신들, 교회옆 경로당에 나부끼는 새마을운동 깃발까

. 동네 골목에 들어서면 70년대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갑니다.

군대에 대한 추억도 유별납니다. 아내와 결혼해서 여름 휴가 때면 화천에 가

곤 했습니다. 화천 북방 백암산과 철책선에서 군생활을 했거든요. 민간인통제

구역 너머인지라, 민통선 가까이까지만 가서 그때를 회상합니다. <비목>이 지

어진 백암산 정상 1179m 고지, 해질 무렵이면 투입되던 휴전선 소초며, 팬티 바

람에 완전군장으로 집합하던 연병장. 그 귀한 휴가인데도 불평 없이 따라 와

준 아내에게 아직도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예전에 섬겼던 교회들에 대한 그리움도 짙습니다. 도림교회, 성문교회, 신대방

제일교회 등등. 서울에 있을 때 가끔은 그 교회들을 들렀습니다. 물론 아무도

보지 않는 밤에 몰래 갔다 왔지요. 얼마 전에도 7년이나 살던 도림교회 목양

관이 생각나서 아내와 다녀왔습니다. 그때 그 목사님들, 목회 잘 하고 계시는

. 전임 전도사때 섬겼던 성문교회는, 25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청년들과 연

락을 오가고 있습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나? 추억을 먹고 삽니다.

    
향수2

그런 의미에서 <원주영락교회30년사>는 소중한 재산입니다. 교회의 역사요 뿌

리이지요. 우리가 살아 왔던 아름다운 이야기가 한 장 한 장에 빛바랜 사진들

과 함께 담겨 있습니다. 때가 되면 오늘 우리 이야기를 담은 영락교회 50년사

를 펴내야겠지요.

    
저는 영화를 봐도 역사물을 좋아합니다. 특히 우리가 살아 왔던 근현대사를

바탕으로 그려진 영화들. 교회에서 상영했던 <국제시장>은 조금 앞선 시대이

지만, 참 감동적으로 봤습니다. <JSA공동경비구역>은 철책에서 근무할 때가

생각나 몇 번이나 봤습니다. 80년 광주항쟁을 그린 <택시운전사>, <1987>

그 날에 그 광화문 종로 거리에 제가 있었기 때문에 추억이 새롭습니다.

    
찬송가 510<하나님의 진리등대>는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찬양인데요, 결혼

하시고 묵방교회 성도들 앞에서 부른 첫 찬양이어서 추억이 담겨 있습니다.

419<주날개밑 내가 편안히 쉬네>는 엄마가 좋아하시던 찬양이어서 특별합

니다. 가수 김진호의 <가족사진>은 엄마가 돌아가시고 제 입에 달고 다녔던

노래입니다. 추억을 일깨우는 가사들이 마음을 깊이 울립니다.

내 젊음 어느새 기울어 갈 때쯤 /그제야 보이는 당신의 날들이 /가족사진 속

에 미소 띤 젊은 우리 엄마 /꽃 피던 시절은 나에게 다시 돌아와서 /나를 꽃

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 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

/당신의 웃음꽃 피우길

    
향수3

사람이 다 그렇겠지요. 아프거나 힘들 때면 어릴 때 집이 떠오릅니다. 늘 사랑

으로 안아 주시던 엄마, 눈물로 기도하시던 엄마가 보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그 짐자전거, 일찍 일어나셔서 늦은 밤까지 늘 일하시던 모습이 보입니다.

마가 가신 후에 그리울 때면 아버지를 찾아뵙니다. 아버지를 통해 엄마의 체

취를 느끼고 싶은 것이지요. 엄마가 그리울 때면 두 형님들께 전화합니다.

랐던 엄마 이야기를 들을 때면 가신 엄마가 다시 살아 오십니다. 시장에서 돌

아오신 아버지에게 세 아들들이 인사하던 마루, 한 솥 가득 삶은 맛없는 국수

에서 라면 줄기를 골라 주시던 밥상, 추운 겨울 온 식구가 한 방에서 덮고 자

던 이불. 그 불은 라면, 쾌쾌했던 이불 냄새가 그립니다.

    
엄마가 마지막에 점점 가까이 가실 때 아버지께서 가장 힘들어 하셨던 일은

병수발 드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치매. 살짝살짝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하시

는 엄마의 치매이셨습니다. 조금씩 더 심해지실수록 아버지는 못 견뎌 하셨지

. 아버지를 외간 남자로 보시는 엄마, 그래서 가끔 누구세요 나가시라

리치기도 하셨습니다. 다른 남자와 사는 엄마 마음은 오죽하셨을까? 60년이

넘도록 함께 살아 오셨으면서도, 그간의 기억을 조금씩 잊어 가셨던 것입니다.

    
, 추억입니다. 가족은 피가 섞여서라기보다 함께 갖고 있는 추억이 있기 때

문에 소중한 것 아닐까? 춥고 배고팠던 어린 시절, 방황하던 젊은 때, 함께

살면서 기쁨과 슬픔을 나누었던 공동의 기억. 그 추억이 내 인생을 받쳐 주고

있는 또 하나의 기둥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탕자를 생각해 봅니다. 탕자가 어떻게 아버지 집에 돌아 올 생

각을 했을까? 그리도 호기롭게 돈을 챙겨 집을 나가고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

던 그가. 아버지와 집에 대한 추억 때문은 아니었을까? ‘내 아버지에게는’(

15:17). 흥청이던 때에는 관심도 없다가, 인생에 실패해서 끝에 이르자 그때

그 추억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보고 경험했던 아버지에 대한 추

, 그 고운 추억은 끝장 난 내 인생이라도 받아 주실 거라는 확신을 갖게 했

습니다. 사랑 많으신 아버지가 풍족한 양식으로 품꾼들조차 배불리 먹였던 기

억이 복기된 것입니다. 그 추억이 탕자의 주저앉은 자리, 실패한 자리, 끝내고

싶었던 인생에서 다시 일어나 고향집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추억이 탕자를 돌

이키게 했다!

    
추억의 박물관

20세기 지성 프란시스 쉐퍼의 아내 이디스 쉐퍼(Edith Schaeffer)는 철학자이

자 신학자인데요, <가정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가정은 추억의 박물관이다”.

저는 이 말을 참 좋아합니다. 인생에 소중한 추억들은 가정에서 주로 만들어

지지요. 어릴 적 부모형제와 관련된 추억들이 앨범에, 기억 속에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아동심리학자들은 아동기를 행복하게 지낸 사람들은 전체 인생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했던 따스한 추억은 인생

에 큰 선물입니다. 그 추억은 인생을 살면서 엇나가던 길에서 다시 돌아오게

합니다. 실로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좋은 기억

니다. 부모는 박물관 관장이요 가족은 이 박물관에 추억을 모으는 수집가들이

.

    
<박물관은 살아있다>라는 영화가 있어요. 박물관에 공룡이며 오래된 전시물들

이 살아나서 주인공과 신나는 모험을 합니다. 마치 에스겔 골짜기 마른 뼈들

이 살아나서 춤을 추듯이.

    
우리 추억의 박물관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때 그 일, 그 사람. 때론 부끄러워

감추고 싶은 자료도 있고, 오늘 다시 살아났으면 하는 자랑스러운 자료들도

있습니다. 그 추억의 자료들은 죽어 있지 않고 되살아서 오늘의 내게 말을 건

넵니다. 나를 위로하기도 하고 힘을 주기도 하면서 인생을 풍성케 합니다.

    
오늘의 일들도 추억의 박물관에 하나씩 고이 간직될 테이지요. 우리 아이들이

부모인 나와 함께 했던 추억의 박물관을 찾을 날도 올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

부부간에도, 교회에서 성도들 간에도 마찬가지이겠지요. 그 날에 기쁨으로 문

을 열도록, 아름다운 이야기 보화들로 가득찬 박물관이 되도록, 오늘 새롭게

시작하시는 건 어떨까요. 가정의 달을 시작하며, 우리 집을 내 인생을 추억의

박물관으로 다시 한 번 멋지게 꾸며 보는 것은 어떨까요.

    
/사랑으로 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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