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오시는 그 곳

• 아시나요. 그 조산원

작년 이맘때였지요. 이렇게 성탄이 가까이 왔을 무렵, 세 아이들 빙 둘러 앉혀

놓고 제가 목에 힘주며 말했습니다.

“아빠가 탄신(?)하실 때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집에서 낳으셨단다”.

그러자 아이들이 깜짝 놀랍니다. 말도 안 된다는 듯,

“어떻게 집에서 아기를 낳아요?”

하긴 요즘 아이들이야 병원에서 낳는 것 밖에 모르지요. 우리 교회에도 ‘파

(派)’가 있잖아요. ‘미래’파, ‘21세기’파, ‘순풍’파...

원주에 처음 왔을 때 놀란 것이 있습니다. 저기 봉산동 원주초등학교 앞에

<조산원> 때문입니다. 지금은 없어졌지요, 파란 바탕 고딕체 흰색 글씨로 쓴

자그마한 그 간판을 기억하십니까? 제가 하도 신기해서 안에 들어갔어요.

“저기요, 애 받어유?”

아무도 없는 듯 무심하더니 할아버지가 나오시며 대답합니다.

“이젠 애 못 받어, 할마시가 늙어서 못 바더어-”

• “참 좋은 시상여”

저는 청주시 석교동 석교초등학교 옆 기철네 집에서 낳았습니다. 기철이는 세

살던 주인집의 아들입니다. 아들 둘에 셋째를 가지신 어머니는 이번엔 딸이기

를 바라셨다지요. 사촌 언니가 도와 주셔서 저를 무사히(?) 낳으셨습니다. 그

땐 애 낳으러 방에 들어 갈 때 마지막으로 신발을 쳐다봤다지요.

“다시 이 신발 신을 수 있을까...”

애낳다 죽는 경우도 적잖게 있었다잖아요. 그래서 신발을 다시 신을 방향으로

돌려놓고 들어갔다네요. 혹 6,25피난 중에 길거리에서 아님 열차 안에서 태어

나신 분도 있으실까요.

그래서이지요. 아버지 마지막 하시는 말씀은 늘 똑같습니다.

“좋은 시상여”

저도 아이들에게 옛날 얘기 해 주고는 끝에 똑같이 붙입니다.

“참 좋은 세상이다”.

• 저 낮은 곳을 향하여

성탄카드를 보면 마구간이 휘황찬란하지요. 착한 나귀, 동방박사, 목동들이 둘

러서 있는 가운데 금빛 보자기에 싸여있는 아기 예수님, 마리아의 깨끗하고

성스러운 모습, 여유롭게 지팡이를 들고 서 있는 요셉의 모습까지.

그러나 첫 성탄의 모습은 그리 여유롭거나 멋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병원도

집도 아닌 마구간입니다. 차갑고 냄새나는 짐승의 밥그릇, 똥오줌 범벅이 된

짐승의 우리입니다. 거기서 사람이 애를 낳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밖은 여관마다 가득한 웃음소리, 춥고 사나운 날씨에 밤하늘은 얼어붙고, 안으

로는 제 자리 빼앗긴 짐승들이 울어 대고, 두를 옷도 덮을 요도 쬐일 불도 없

으셨으니. 애는 어떻게 받았을까요. 탯줄은 어떻게 끊었을까요. 그러나 그곳이

하늘에 하나님, 우리 죄와 어둠에서 구원하시는 구세주께서 탄생하신 거룩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게 있습니다. 예수님은 저 높은 곳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다는 것,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겸손히 허리 굽혀 낮

은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 발바닥에 말똥 묻힐 각오는 해야 한다는 것, 큰

성 예루살렘이 아니라 작은 마을 베들레헴 입니다.

<성탄절>

-임규일-

우리는 저마다

높디 높은 곳만 우러르며

발동동

아우성인데

예수님은

저 낮고 낮은 아래로만

소리 없이

내려가시네

그러니

만날 수가 없지

뵐 수가 없지

그렇구나

주님 오시는 성탄(聖誕)이 저기 목양실 창문 밑까지 와 있습니다. 첫 성탄에

밤하늘 별빛 올려 보던 목자들 마음 되어,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향하

면 주님 만날 뵐 수 있으려니. 헛된 욕망 내버리고 주님 오시는 그 곳, 베들

레헴을 향해 조금 더 내려가리라.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