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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당연하지? 감사하지!
이름 최현장
작성일자 2021-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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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감사하지!


• 날벼락 같은 일

지난 목요일, 출근해서 컴퓨터를 켰는데 좀 이상합니다. 파일들이 이름은 있는

데 열리지 않는 거예요. 대신 영문으로 협박성(?) 글이 뜹니다. . 랜섬웨어

(ransomeware)에 걸린 것입니다. 컴퓨터 시스템을 감염시켜서 사용할 수 없

게 하는 악성 프로그램이지요. 랜섬(ransom), 이름 그대로 엄청난 몸값

지불해야 파일을 복구할 수 있다 하니, 웬만한 사람은 낭패를 볼 수밖에 없습

니다. 내가 이 경험을 할 줄이야!



그 순간 다행과 불행, 두 마음이 오갔어요. 다행인 것은 외장하드에 주기적으

로 저장했다는 것이고, 불행인 것은 근간에 좀 게을러서 1월 이후 저장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근 5개월여 동안의 수백 개 파일들이 사라졌습

니다. 즐겨찾기를 비롯해 편리하게 설정해 놓은 것들도 날라 갔습니다. 한글

문서부터 모든 프로그램 로그인에까지, 내 방식대로 세팅해 놓았는데 전부 다

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잠시 그런 생각까지도 들었어요. 요구하는 몸값(?)이 얼마나 되나? ?

이백? 차라리 지불하고 파일을 되찾을까? 악한 해커와의 거래만 아니라면 생

각해 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수개월 동안 땀 흘린 파일들을 얼마간의 돈

에 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 정보를 다루는 기업체나 군사 기밀 문서였

다면 엄청난 돈이 오간다는 말이 이해되었습니다.


목사님, 삭제하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윈도우를 깔기 위해 감염된 파

일들을 완전히 삭제하려는 순간, “? 아 예... 그러세요”. 수많은 파일들이 마

구 지워져 나갈 때 기분이 묘하더군요. 무언가 잔뜩 쌓아 놓았던 것들이 무너

지는 느낌. 한 줄 한 줄 땀 흘려 작성했던 아까운 파일들, 더 자주 저장해 놓

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습니다. 바이러스에 좀 더 대비하지 않은 것도 아쉽고.


당연한 것은 없다

상실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지요. 코로나 이전, 마음대로 다니고 해외에

도 가고 교회에 와서 예배 드렸습니다. 소리 높여 찬양을 하고 통성기도에,

을 잡고 안아 주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마스크를 써야

하고 마음대로 오갈 수 없습니다. 그때는 당연하다고 감사할 줄 몰랐지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후에라야 그 소중함을 깨닫고, 건강을 상실해 봐야

그 소중함을 아는 게 사람인가 봐요. 10여 년 전 허리 수술 할 때, 화장실에

서 내 힘으로 대소변을 해결하는 그 평범하고 당연한 것이 힘들었습니다.

실해 보니 느끼게 됩니다. 그때 그 일이, 너무나 당연했던 일들이 감사였구나.

 

그러자 

하룻밤 사이에

사소한 일들이

굉장한 일로 바뀌어 버렸다.

 

세면대에서 

허리를 굽혀 세수하기,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거나

양말을 신는 일,

기침을 하는 일,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

내게는 더 이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박완서, <일상의 기적> 중에서-

 

그래서인가요. 새롭게 윈도우를 깔고 컴퓨터 앞에 앉는 순간, 감사가 밀려 왔

습니다. “그동안 감사하지 못했구나”. 아침에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면 당연히

작동되는 일, 파일들을 찾고 클릭하면 열리는 일, 자료들을 검색하고 글을 쓰

는 일, 편집하고 정리해서 저장해 놓는 일. 당연히 거기에 있어야 할 것들!

늘도 내일도 내 생각대로, 내 계획대로 진행되리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연하다 생각되던 것이 제 자리에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당연하지

언젠가 TV프로그램 중에 <당연하지> 게임이 있었지요. 마주 선 두 사람이 서

로의 질문에 무조건 당연하지라고 대답해야 하는 것입니다.

니가 못 생긴 거 알지” “당연하지

너 나 좋아하지” “당연하지

너 뱃살 때문에 발등 안 보이지” “당연하지

 

상대에게 곤란한 질문을 해서 골탕 먹이는 게임이지요. 그런데 오늘날 이

연하지가 문제 아닐까? 내가 갖고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오늘 숨 쉬고 말하고 걸어 다녔지?” “당연하지

아빠 엄마가 일하시고 길러 주셨지?” “당연하지

교회 오면 선생님들이 반겨 주시지?” “당연하지

중환자실에 산소호흡기 안 써 봤지?” “당연하지

 

그런데 그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당연한 컴퓨터가 랜

섬웨어에 걸려 작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숨 쉬는 일이 어려

워 질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을 수도 있습니

. 병원에 있는 사람은 집에 가서 잘 수 있다면합니다. 그러나 매일 집에

서 자는 사람은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빚이 많은 사람은 이 빚만 없다면’,

그러나 빚이 없는 사람은 그것을 당연하다 생각합니다. 홀로 계신 어르신들,

얼마나 가족이 그리울까요, 지지고 볶았어도 함께 살던 그 옛날을 추억하며

사십니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 살아도 고마움을 모릅니다. 집이 아니라 집구

에서 살지요. 익숙해지면 잊어버리는 것이 인간인지라, 당연함이 자리하는

순간 불행이 시작됩니다. 실로 인생에 가장 큰 병이 있으니 당연병이라.

 

사람은 산에 걸려 넘어지지 않습니다. 거대한 바위도 마찬가지이지요. 단지 작

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집니다. 이렇게 사람은 작은 불평에 실족하고 시험에

빠집니다. 반대로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작은 것들을 감

사하기 시작할 때 큰 기쁨과 축복으로 이어집니다.

 

당연한 것에 대한 감사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에는 사탄이 틈타지 못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감사한 만큼 믿음입니다. 감사의 크기가 행복의 크기입니다. 감사하는 성도에

게만 행복이 있습니다. 시인 조지 허버트는 이런 기도를 드렸다지요. “하나님,

제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 더 주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감사가 없으면 받아도 받은 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당연한 것에 대해 감사하는 일입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지요. 보고 듣는 것, 숨 쉬고 마시는 것, 먹고 걸어 다니는 것, 내가 누리는

그 어느 것도 당연하지 않습니다. 당연한 듯 보일 뿐이지요. 누군가의 사랑과

헌신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선하신 하나님 손이 함께 하사 여기까지 온 것

입니다. 그렇게 감사의 눈으로 보면 날마다 반복되는 지겨워 보이는 일상이

기적입니다. 이렇게 숨 쉬고 살아 있어 사람 구실하며 사는 일이 내 힘으로

된 일이 아닙니다. 거져 받은 선물입니다.

 

굳이 돈으로 환산하면 심장 하나에 5억 원이라 해요. 두 눈 뜨고 두 다리고

걸어 다니는 사람은 몸에 51억 원이 넘는 재산을 지니고 다니는 거래요. 농담

처럼 말하는 두 발 자가용’, 거리에 어떤 자동차보다 비싼 두 발 자가용입니

. 앰뷸런스에 실려 가서 산소 호흡기를 쓰면 시간당 36만원이래요. 내 발로

걷고 내 코로 공짜 공기를 마시면 하루 860만원씩 버는 셈이라니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꺼내서 정말 당연한 것이 맞는지 셈해 보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밤사이에 오늘로 초대 받지 못한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요?

 

무엇보다 우리가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을 바라보며 사는 일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지요. 하나님 은혜입니다. 그 은혜에 감사해야지요.

자가조차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사는 우리에게,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4:6)이라.

 

이런 질문과 대답들은 어때요?

오늘 숨 쉬고 말하고 걸어 다녔지?” “당연하지 아니 감사하지

아빠 엄마가 일하시고 길러 주셨지?” “당연하지 아니 감사하지

교회 오면 선생님이 반겨 주시지?” “당연하지 아니 감사하지

구원 받아 하나님 자녀 되었지” “당연하지. 아니 감사하지”.

 

감사의 반대말, 당연

그래서입니다. 감사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불평? 원망? 감사의 반대말은

아닐까? ‘당연하다는 마음속에는 감사가 사라지기 때문이지요. 당연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 담겨 있는 감사가 삶을 의미 있고 아름답게 합니다. 물론

우리네 삶이 더욱 힘겨워 졌습니다. 교회는 더하지요. 마음껏 예배하지도,

할 수도 없습니다. 감사는 너무나 멀리 있는 단어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성도는 황량한 광야에서도 감사를 발굴해 내는 사람임을 기억

해야 합니다. 식사대접을 받으면 고맙습니다하며 감사를 표하지만, 날마다

밥을 해 주는 엄마에게 고마움을 표하는지요.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하십시오. 삶을 저주로, 일상을 무덤으로 만드는 모든 세력에 저항하십시

. 매일 당신 앞에 펼쳐지는 기적과 신비에 눈뜨십시오. 당연한 일상에 감사

하십시오. 오늘 살아 있음에 감사하십시오. 좀 누추해도 들어가 잠을 잘 수 있

는 집이 있음에 감사하십시오. 공부하는 학생은 공부할 수 있음에 감사하십시

. 맘에 들지 않아도 일을 하고 있음에 감사하십시오. 운전하는 분들 기쁨으

로 핸들을 잡으십시오. 밥을 지을 수 있음에, 그 밥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

십시오. 대박나세요? 엄청난 일을 꿈꾸지 마시고 오늘 주어진 평범한 일을 귀

히 여기고 감사하십시오. 1년 전에도 했고 지금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할

지겨운 그 일, 그 매일의 일에 감사하며 보람을 느끼며 사는 삶, 위대합니다.

보리떡다섯 개가 끝내는 기적을 이룰 것입니다. 물고기두 마리가

오천 명을 먹일 것입니다. 기적은 이미 우리 매일 매일의 삶에 스며들어 있습

니다. ‘일상과 기적은 서로 연결되어 하나가 되는 것이라.

 

오늘 저녁,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되던 아내에게 이렇게 말해 보는 것은 어떨

까요? “여보 고마워”. 너무나 당연한 부모님께 아빠 엄마 감사합니다”. 너무

나 당연한 아들딸을 꼭 안아주며 고맙다 얘들아”. 주일마다 너무나 당연해진

찬양에, “주집사님, 감사드려요”. 20216월 마지막 주일, 어떻게 반년을 보

낼까? 당연을 버리고 감사로 갈무리하는 일, 여러분 어떠세요?

   

/사랑으로 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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