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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여기가 좋사오니(?)
이름 최현장
작성일자 2021-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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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좋사오니(?)


굿이라도 해야 할까?

7월입니다. 2021년 하반기,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저희 집은 7월 첫 날에 난

리를 겪었습니다. 정말 물난리요. 지난 주일에는 랜섬웨어로 난리를 겪었다더

니 이번에는 또 무슨 물난리? 예 주방 싱크대에 온수관이 터져서 거실에 물바

다가 된 것입니다. 혼자 집에 있던 아내는 처음 당한 일에 속수무책입니다.

이 얼마나 빠르게 밀려드는지 금방 거실에 차더라는 거에요. 어찌할 줄을 몰

라 하던 중에, 마침 관리실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급히 소화기 밸브를 잠갔기

에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다면 방까지 물이 들어가 큰일 날 뻔했습니다. 저도

밖에 있다가 부리나케 들어와서 함께 물을 퍼내는데요, 정말이지 끝이 없습니

. 무엇보다 물이 바닥에 스며들었으니, 냉장고며 소파며 싱크대 밑 장판 틈

새까지, 모두 들어내고 닦았습니다. 이 여름에 곰팡이나 냄새가 생길까 봐 보

일러에 에어컨에 선풍기를 다 동원해서 말려야 했습니다. 밤늦게나 되어서야

정리가 다 되었습니다. “6월 마지막에는 랜섬웨어로 마무리하더니, 하반기 시

작은 물난리로 하다니”, 세상 사람 같으면 말할 거에요. “뭐가 꼈나, 굿이라도

해야 할까 보다(?)”



여름 장마에 물을 퍼내시는 분들 생각이 났습니다. 저희야 잠시 소동이었지만,

가구들까지 물에 잠기거나 아예 이재민이 되신 분들, 이제 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는데, 우리 교우들 가운데도 이런 집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신학교 다닐

때 낡은 기숙사에 물이 들어와 책상이며 다 들어냈던 적이 있습니다. 그 후에

도 습해서인지 늘 곰팡이 냄새와 함께 살았지요. 장신대에서 다리 하나 건너

면 천호동 풍납동인데, 학생들이 거기서 자취를 적잖게 했습니다. 지대가 낮아

서 해마다 물난리가 나기 때문에 방값이 쌌습니다. 장마 때마다 한강에 물이

높아지면 풍납동 같은 저지대로 물이 역류해 들어 왔습니다.

밤에 자는데 기분이 이상해. 문을 열었더니 물이 밀고 들어오더라”.

영웅담처럼 이야기하는 이재민 친구들, 학교 기숙사는 저들의 피난처가 되었

습니다. 아마 그때 이후로 물난리를 당한 것이 처음 아닐까?

 

죽비 같은 음성

다음날 새벽예배, 말씀을 전한 후 기도하기 위해 강단 아래 앉으니 온몸이 천

근만근입니다. 간밤에 제대로 잠을 잔 건지 만 건지,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

감사했습니다. 정말이지 감사가 밀려왔습니다. 지난밤에 그 난리를 겪었는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이렇게 새벽을 인도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인가? 아내가

집에 있었던 것이, 방안으로는 물이 안 들어간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물수건

을 짜는 게 힘든데 큰 애가 들어와서 해 주니 얼마나 감사한가?

여보, 자식 키운 보람이 처음이지?”

장마에 물난리를 당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거야 무슨 불평거리인가? 얼결에

구석구석 청소하게 되어서 감사하고, 다음날 낡은 관을 교체하니 별문제 없이

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되어 감사였습니다. 관리 아저씨 말이 생각났습니다. “

이 아니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맞습니다. 물이니 망정이지 불이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이렇게 새벽 제단, 십자가 아래에서 감사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최목사, 하반기 정신 차리라는 사인이야”.

죽비에 얻어맞은 듯한 음성. 그랬습니다. 5분만 물이 흘러도 난리가 나는 집

입니다. 조금만 물이 더 했다면 방안에 넘쳤겠고, 온 집이 잠겼을 것입니다.

불이었다면 끝장나는 거였고. 정신 차리고 깨어 있지 아니하면 흔들리는 인생

입니다. 사는 게 괜찮다고 끊어진 연줄처럼 대충 느슨해 있다가는, 땅에 곤두

박질칩니다. 요즘 아이들 말로, 한순간에 혹 가는 인생입니다. 그러니 하반기,

하나님 바라보라는, 주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가라는, 그래야 흔들리지 않는다

.



위대한 하산

여기가 좋사오니”. 변화산에서 베드로의 말이지요. 여기가 편안하다고, 지금

이 좋다고, 익숙하다고 눌러앉고 싶은 것입니다.

기도하실 때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9:28)

평소에 주님은 때묻은 누더기에다 못먹어서 야윈 얼굴이셨지요. 갈릴리 바닷

가에서 비린내 나는 옷, 누추한 곳에 주무시고, 대하는 사람들도 죄인들 병자

들이어서 삶이 고단하셨지요. 그런데 지금 그런 모습은 간데없고 얼굴과 옷에

광채가 나십니다. 하나님과 본체이신 모습으로 메타모르포데’(μεταμορφωφη),

변형되신 것이에요. 아마도 십자가를 앞두고 마음이 무거운 제자들에게, 부활

후의 영광된 모습을 미리 보여주신 것 아닌가 싶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산 위에서 이런 환상적인 모습을 보니 너무나 아름답고 좋아요. 그래서 산 아

래 내려가기 싫습니다. 거기에는 율법을 앞세워 정죄하는 바리새인들, 주님을

잡아 죽이려는 제사장들, 보기 싫습니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병자들, 힘겹습

니다. 더욱이 주님은 자꾸 고난의 십자가를 지시겠다고 하십니다. 자기를 부인

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십니다(9:23). 그래서 한 말이지요.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그러나 주님은 산 아래로 내려가자 하시지요. 산 위의 영광에 안주해 계시지

않았습니다. 편안하고 익숙한 삶을 뒤로 하고 사명을 찾아 산 아래로 가십니

. 거기에는 산에서 내려오길 간절히 기다리는 귀신들린 아들이 있습니다.

어지고 가셔야 할 십자가가 있고 묵묵히 걸으셔야 할 골고다 길이 있으셨습니

.

 

위대한 하산! 신앙은 신비가 아니라 현실입니다. 실제로 산에서 내려와 현실에

돌아와 보니 마을에 난리가 났지요. 귀신들린 외아들을 데리고 온 아비에,

기관들과 격렬한 논쟁이 일어나고, 제자들은 누가 크냐 싸움이나 하며. ~

참 피곤합니다. 산에서 보았던 그 찬란하고 황홀한 광경과는 영 딴판입니다.



산을 내려가야 할 때

우리도 이런 때 있지요. 좋은 곳에서 눌러앉고 싶은 때. ‘여기가 좋사오니’.

히나 코로나 시대, 1년 반이나 산 위에서산 것입니다. 이제는 코로나 이후

의 현실이 코앞에 와 있습니다. 백신 접종이 더해가는 가운데 거리두기 단계

도 조정되었습니다. 이제 마스크를 벗고 예배 드릴 날이 멀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염려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이들 같으면 다시 학교에 가야 합니

. 성도들은 예배와 봉사 친교 등 교회를 중심으로 한 사명을 준행해야 합니

. 교회학교 아이들도 다시 교회에서 예배드려야 합니다. 이번 주일에 음악부

모임을 갖습니다. 찬양대를 다시 회복하도록 준비하기 위함입니다. 그동안 너

무 오래 쉬었기 때문에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봄이 되면 밖으로 나와야 하듯, ‘방콕하던 몸들을 추슬러 집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산을 내려가야 할 때가 가까이 온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지요. 애굽에서 400년 종살이하다 출애굽 합니다. 해방이 되

어 자유를 찾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뻐요. 그러나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광야로 나와 보니 광야의 고통이 있습니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집도 절도

없습니다. 애굽에서는 그래도 마실 물이 있었고, 가끔 먹는 고기가마도 있었습

니다. 애굽을 그리워한 이유이지요. ‘거기가 좋았사오니’.



우리 신앙이 때론 골방에 처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산 위에 오르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기가 좋사오니하며 골방에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전쟁이 끝났는

데도 계속 참호 속에서 눌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다시 광장에 나와야 합니다.

거기가 일터요 사명의 장소입니다. 노아의 대홍수가 끝나면 온 가족들이 배

안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하나님 주신 땅에서 다시 땀흘려 농사를 짓고 일상

을 살아야 합니다. 다시 보리떡과 물고기를 모아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궈야

합니다. 다시 향유 옥합을 깨뜨리며 주님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주님은 하

늘만 바라보고 땅의 일을 잊고 살라 하지 않으십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사람에게 두 마음이 모두 있지요. 안주하고 싶은 마음과 변화를 소망하는 마

음입니다. 한편으론 현실 그대로 있고 싶습니다. “이만하면 됐지. 여기에 만족

. 산 위가 좋아. 이 나이에 무슨?”. 그러나 성도는 꿈과 비전을 가지고 일어

서야 합니다. 갈렙이 그리했지요. 팔십 오세의 노년이 헤브론을 소망하며 일어

섭니다.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14:12)



라인홀드 니버(K. R. Niebuhr)가 이렇게 기도했다지요.

하나님이시여, 고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고칠 수 있는 용기를 주

옵소서! 고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냉정함을 주옵

소서! 그리고 고칠 수 없는 것과 고칠 수 있는 것을 식별할 지혜를 주옵소서.

, 주여! 나로 하여금 변화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물난리로 시작한 2021년 하반기, 주님 의지 하십시다. ‘여기가 좋사오니?’

니요. 산 아래로 내려 가십시다. 거기서 주님과 함께 내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

십시다. 여러분 가정과 우리 함께 섬기는 교회에 주께서 함께하시길 빕니다.

/사랑으로 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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