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에 서서

• 명화 <기도하는 손>

알브레히트 뒤러 (Albrecht-Düre)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종교개혁 당시에 독

일에서 활동한 사실주의 작가인데요, 그는 특히 하나님 말씀을 독창적인 수법

으로 재현한 화가이기도 합니다. 그가 남긴 걸작이 우리가 잘 아는 <기도하는

손>입니다.

<사진>

(1508년, 종이 위에 브러시와 잉크, 29x20cm, 독일 뉴른베르크 박물관)

거친 두 손만을 그린 단순한 이 그림은, 그 정교한 작품성도 높지만 숨겨진

내력이 감동적입니다.

뒤러는 어릴 때부터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림 공부를 할

만큼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작정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같은 처지의 화가 지망생 프란츠(Franz Knigstein)를 만납니다. 그

러나 하루 벌어 하루 먹기에도 벅찬 그들에게 미술 공부는 꿈같은 이야기였습

니다.

어느 날 프란츠가 뒤러에게 말합니다.

“이렇게 먹고 사는 데 시간을 다 보내다 가는, 그림은 꿈도 꾸기 어렵겠어. 공

부는 교대로 하는 것 어때. 우선은 네가 재능이 뛰어나니, 먼저 그림공부를 해

라. 네가 공부를 마치고 돈을 벌면 나는 그때 공부하겠네.”

뒤러는 그럴 수 없노라고 거절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둘 다 공부를 포기할 수

는 없었지요. 결국 뒤러는 미술학교에 들어가 공부하게 되었고, 프란츠는 친구

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밤낮없이 일했습니다.

얼마가 지났을까요. 뒤러는 친구가 벌어 준 돈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학교를

졸업하고 제법 유명한 화가가 되었습니다. 작품이 처음 팔리던 날, 뒤러는 고

마운 그 친구를 찾아 갔습니다. 약속대로 이제 역할을 바꾸어 친구를 미술학

교에 보내기 위해 돌아 온 것입니다. 하지만 프란츠는 친구를 위해 너무 오랫

동안 험한 육체노동을 했기에, 손이 굳어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습

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란츠를 찾아간 뒤러는, 창문을 통해 프란츠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뒤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

고 있었습니다.

“주님! 저의 손은 이미 일하다 굳어서 그림을 그리는 데는 못 쓰게 되었습니

다. 내가 할 몫을 뒤러가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참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하소서!”

아, 이 광경을 본 뒤러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두 손을 꼭 모은 친구의 그 손,

마디마디 상처투성이였지만 사랑과 우정으로 뭉친 진정 아름다운 손이라고 생

각되었습니다. 그 순간 뒤러는 흐르는 눈물과 복받치는 감정을 참으며, 그 자

리에서 즉시 연필과 그림도구를 펼치고 친구의 기도하는 손을 정성스럽게 스

케치 했습니다.

“프란츠! 자네의 그 손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손

이네.”

그래서일까요? 뒤러가 그린 친구의 손은 아름답게 덧칠하려는 어떤 의도도 없

이,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뒤러의 저 유명한

작품, <기도하는 손>이 탄생하여 5백 년이 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

었습니다.

• 감사와 아쉬움

저기 2012년이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누군가 말했다지요.

“오늘 이 시간은 내 남은 생애의 첫 날이며, 어제 죽어간 그 어떤 사람이 그

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날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산 2012년 삼백 예순 다섯 날은 모두 소중한 시간들이었

습니다.

이 시간 한 해의 마지막에 서 있는 우리에게 남은 것이 무엇입니까? 한 해의

고마움입니까? 아니면 아쉬움과 상처입니까? 양지의 눈은 쉬 녹지만 음지의

눈은 오래 가듯, 그늘진 마음 구석에 상처가 잔설(殘雪)처럼 남아 있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상처투성이일망정 오늘 이 자리까지 온 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입니

다. 힘겹고 눈물겨운 순간이 왜 없었겠습니까? 홀로인 것 같아 외로운 순간이

왜 없었겠습니까? 아픔도 있었고 기쁨도 있었습니다. 고통의 눈물을 흘리는

날도 있었고, 감사의 기쁨을 나누었던 날도 있었습니다.

“그때 θ은혜였지...” 하며 감사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때 그 일이 이렇게 되었으면...” 아쉬웠던 것은 무엇입니까?

“좀 더 잘 할 걸...” 후회되는 일은 또 무엇입니까?

이현주 목사님의 시가 적절합니다.

<발자국>

-이현주-

발자국은 뒤에다가

남겨두는 것.

이뻐할 것도 없고

미워할 것도 아닌

발자국은 뒤에다가

남겨 두는 것.

남겨두고 미련없이

떠나가는 것.

• ‘프란츠’ 같은 당신에게

하지만 한 가지 잊지 말 것은, 어느 때이든 우리는 ‘홀로’가 아니었다는 것입

니다. 보이지 않지만 동행이 되어 주신 분이 계십니다. 누구에요? 예, 자비하

신 주님이십니다. 절망의 어둠을 딛고 일어선 것도, 원망과 미움을 이해와 사

랑으로 바꾼 것도, 주께서 함께 하셨기에 가능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함께 걸

어 온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가족들이 있고요, 신앙의 형제들인 영락교회 성

도들이 계십니다. 지금 옆 자리에 앉아 함께 예배하는 이들입니다.

얼마나 고마운 얼굴들입니까? 우리들 길지 않은 인생 여정 가운데서 고락을

함께 하며 시간의 파도를 헤쳐 온 분들입니다. 우리 영혼에는 이들과 함께 걸

어온 세월의 흔적이 새겨져 있습니다. 저들의 눈물어린 기도와 희생이 있었습

니다. 새벽마다 그 누군가가 나를 위해 중보의 기도를 올려주고, 내 대신 수고

한 까닭에 오늘 내가 여기 있습니다. 저들은 프란츠 처럼 뒤러를 위해 기도하

며 수고를 아끼지 않은 이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숙명적으로 외로움을 느낀다. 이 외로움 앞에 내놓는 이번 삶의

유일한 답은 공동체다. 함께 살고,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며, 하나님을 사랑

하고 우리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는 그 형제와 공동체를 이루어 가까

이 살아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보여야 한다.”

(도로시 데이(Dorothy Day) <고백>the Long Loneliness 중에서)

우리 주님을 대신해서, 저는 2012년 맨 끝에 서 있는 영락의 성도들을 위로하

며 격려합니다.

“고생하셨어요들, 달려오시느라, 가정과 교회를 세워 가시느라...”

무엇보다 한 해 동안 임마누엘로 함께 하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내 부족함까

지 채우셔서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하셨을 주님을 찬미할 뿐입니다. 아울러 한

해 동안 졸기눌변(拙技訥辯)한 <목자의 글>을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프란츠 같은 당신에게...

♫(찬송가 214장)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