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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거룩한 입맞춤(a holy kiss)
이름 최현장
작성일자 2021-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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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입맞춤


위대한 kiss

입맞춤’, kiss 이지요. 에로틱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단어인데 거기에 거룩함

이 붙어 있습니다. 거룩한 입맞춤! a holy kiss. 성경 당시 근동 지방의 인사

법입니다. 사랑과 친밀함을 담아 상대의 볼에 입을 대는 것이지요. 지금도 유

럽에는 비쥬’(Bisou)라 해서 볼키스를 합니다. 중동에서는 두세 번씩 돌려가

며 볼을 비비기도 하지요. 사춘기때 남학생들은 이거 시급히 도입해야 하는

제도라고 장난쳤어요. 그런데 잘못 알고 있지요. 이성 간에는 볼이 닿지 않고

고개만 숙여 인사합니다.

 

거룩한 입맞춤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을 거슬러 올라

가 보니, 처음 거룩한 입맞춤을 하신 분이 계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

니 사람이 생령이 된 지라”(2:7)

흙으로 빚어 만드신 처음 인간, 형체는 있지만 아직 생명이 없었습니다. 육체

는 있지만 영혼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때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 넣으셨습

니다. 어떻게? 먼저는 꼭 안아 주셔야 했겠지요. 당신의 입을 인간의 코에 대

셨을 것입니다. 생기를 불어 넣으시자 살아 있는 영, 생령(生靈 네페쉬)이 시

작되었습니다. 최초의 거룩한 입맞춤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주님 또한 많은 사람

들을 가까이하셨지요. 몸과 마음이 병든 인생, 소망 없이 죽어가는 영혼들,

들을 만지시고 안아 주시사 고치시고 새 희망을 주셨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흙으로 만든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듯.

 

특히 (2)을 보면, 주께서 십자가에 죽으시자 제자들은 문을 닫고 숨었습니

. 3년간 주님을 따랐지만, 지금은 낙심해서 주저앉아 있습니다. “우린 끝났

.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마치 흙으로 빚어진 처음 인간처럼 아무런 힘도

생명력도 없었습니다. 그러한 저들에게 주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숨을 내쉬며

생명의 영을 불어넣으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

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20:22)

 

(pneuma)을 내쉬며’. 어거스틴은 이렇게 해석해요. “주께서 키스(입맞춤)

통해 성령을 전해 주신 것이라”. 예수께서 거룩한 입맞춤을 하실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이 되게 하시듯. 바로 거룩한

입맞춤입니다. 그러자 낙심하고 주저앉아 있던 제자들이 새 힘과 용기를 얻어

일어섰습니다. 곧 교회를 세웠고 위대한 부활의 역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거룩한 입맞춤

초대교회 역사를 보면, 성도들이 예배로 모였다 헤어질 때, 세례와 성찬식 때

이 거룩한 입맞춤을 했습니다. 형제는 형제끼리, 자매는 자매끼리. 단순히 친

밀함을 나누는 인사 정도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은혜와 성령의 역사를 전하

는 예전입니다. 예배 속에 정식으로 한 의식(liturgy)이 되었습니다.

 

보세요. 예배중 교제 시간에 주인과 노예가 입 맞추며 인사를 한다, 귀족이 가

난한 자를 부둥켜 안고는 한 형제처럼 볼인사를 한다, 당시로 하면 굉장한 일

이지요. (3:28)“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그리스도 안

에서 하나이라는 말씀을 이룬 것입니다. 거룩한 입맞춤, 이것이 기독교 교회

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특히 로마 박해기 때에는 성도의 정체성을 이것으로

나타냈습니다.

 

지하 카타콤, 어두운 불빛 아래 누가 볼세라 숨죽여 찬송과 기도를 드리고,

배를 마친 후 서로의 볼에 입을 맞춥니다. “그리스도의 평안을 빕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킵시다. 힘을 내세요”. 신앙을 지키기 위해 땅속으로 숨어들어 왔지

, 굶주림과 목마른, 죽음의 공포를 막을 수 없습니다. 언제 이 곳을 나갈지,

언제 로마군이 들이닥쳐 아이들까지 사자밥이 될지. 그때 서로의 볼에 입을

대며 위로와 평안을 빌어 주는 거룩한 입맞춤. 눈물이 배어 있는 사랑의 볼키

스이지요. 저들은 이 거룩한 입맞춤으로 그 희망 없는 곳에서 믿음을 지켜간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박해가 더 심했습니다. “기독교는 성적으로 문란한 집

단이라”.

 

AD 203년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는 위대한 순교 사건이 있었습니다. 스물

한 살 젊은 귀족 여성 페르페투아’(Perpetua), 자식이 있는 그리스도인입니

. 그녀의 몸종 펠리키타스’(Felicitas), 임신 8개월 중인 그리스도인입니다.

카르타고의 온 시민들이 보는 원형경기장에서 맹수들의 밥이 되는 순간입니

.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입맞춤 동성애를 하는 문란한 여자들이라고. 그래

도 저들은 끝까지 변개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이름을

바꿀 수 없습니다. ”

마침내 맹수가 달려오는 마지막 순간, 두 여인은 환한 얼굴과 미소로 이 거룩

한 입맞춤을 합니다. 귀족 부인과 몸종 노예가 서로를 안고 입을 맞추며 죽음

을 맞이한 것이지요. 이것을 통해 기독교가 무엇인지, 그 구원과 소망이 얼마

나 귀한 것인지, 그 입맞춤이 얼마나 거룩한 것인지, 온 땅에 알린 것입니다.

(이상규, <교양으로 읽는 역사> 중에서)

 

그래서 신약성서에는 자주 이 말씀이 언급됩니다. (16:16, 고전16:20, 고후

13:11, 살전5:26, 벧전5:14)에서.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

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후13:11)

 

입맞춤이 있는 교회

피고석에 예수님이 앉아 계십니다. 대심문관은 무고한 예수님의 온갖 죄를지

적하며 고소합니다. 교묘한 논리와 거짓된 심문. 예수는 꼼짝없이 궁지에 몰려

심판받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일 그대를 화형에 처할 것이요”.

이제 예수께서 반론을 할 차례, 그러나 한마디 말도, 변명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더니 고소하던 대심문관에게 다가갑니다. 그리고

는 그에게 입을 맞춥니다. 용서와 사랑, 이것만이 인간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길임을 말씀하시는 듯. 기독교의 본질이 여기에 있습니다.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 형제들> 중에서)

 

, 거룩한 입맞춤, 기독교의 본질이 여기에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온 인류

에게 거룩한 입맞춤을 하시사 용서와 화해,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 입맞춤을

받아들이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사 구원과 영생, 복 있는 삶을 살게 하십

니다.

 

교회는 이 거룩한 입맞춤이 임하는 곳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거룩한 입맞춤

이 있는 시간이지요. 나아가 교회와 성도는 삶에서 거룩한 입맞춤을 해야 합

니다. 지역과 이웃을 축복하는 일이지요. 가정과 삶의 자리에서 복음의 씨앗을

심어서 하나되게 하고 평화를 이루는 일입니다.

 

서로 문안하라

가룟 유다의 거짓된 입맞춤만이 가득한 세상, 호떡 안 잘라 준다고 펄펄 끓는

기름에 던져서 주인을 화상 입히는 이 시대에, 무엇보다 코로나로 서로 가까

이 할 수 없고 마스크까지 쓴 이 시대, 어떻게 거룩한 입맞춤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고후13:12)은 말합니다.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기도로 서로에게 문안하는 것입니다. 만날 수 없지만 중보기도해 드리며 축복

을 전합니다. 또한 전화로 소식을 물으며 문안합니다. “잘 지내시지요. 건강

조심하세요. 기도하고 있습니다”. 짧은 한 마디, 형식적인 인사 같지만.

아무도 만날 수 없는 이때, 하루 종일 전화 한 통 오지 않으면, 우울증에라도

빠질 것 같은 이때, “내가 당신을 잊지 않고 있음을, 주께서 당신과 함께 하고

계심을, 이 어려운 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의 끈을 굳게 잡아야 함을

전하는 것입니다. 카타콤의 성도들이 입맞춤으로 축복한 것처럼, 기도하고 전

화하며 축복하는 일입니다.

 

학생때 멀리 서울에 홀로 외롭고 힘들 때, 공중전화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

, “아들 힘들지, 밥먹었어? 기도하고 있다 힘내”, 그 짧은 한 마디에 울컥,

그래 엄마가 기도하고 계시지하며 다시 책상에 앉게 되는 것처럼. 성도의

문안은 기쁨이요 위로이며 평안이요 사랑입니다. 예배로 축복을 받은 성도들,

그렇게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기도하고 있어요. 힘을 내세요.”

 

이번 주일부터 심방을 합니다. 전화심방. 거룩한 입맞춤으로 문안하는 시간,

주께서 약속하신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으로 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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