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矜恤), 불쌍히 여기는 마음

어릴 때 학교 앞은 별거 별거 다 파는 만물상이었지요. 달고나에, 떡볶기에,

튀밥에... 그 중에 병아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따스한 봄날이 되면 할아버

지가 자전거 안장에 종이 박스 한가득 싣고 병아리를 팔았습니다. 귀엽고 예

쁜 노오란 병아리들... 글쎄요. 얼마에 샀을까요? 10원? 100원? 기억이 가물

가물하네요. 그것도 한 마리만 키우면 쉬 죽는다고 해서 두 마리를 세트로 삽

니다.

물론 집에 가지고 오면 엄마한테 혼나지요. 닭똥냄새다 뭐다 집안이 더러워지

니까요. 밤에도 삐악거려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애지

중지하며 방 안에 들여, 박스에 신문지 깔고 접시에 물넣고 밥도 조금, 이름도

지어 주고.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 번 쳐다 보고.” 물을 마시고 부

리 쳐드는 모습도 어찌나 예쁜지요.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병아리 발바닥의

감촉이 전해 오는 느낌도 간질간질 좋고.

그땐 꿈도 야무졌지요. 이 병아리가 닭이 돼서 다섯 마리, 열 마리. 그거로 돼

지를 사서 다섯 마리, 열 마리. 그거로 다시 소를 사서 다섯 마리, 열 마리...

기하급수적으로 셈을 하자면 금방 부자가 되었지요. 열심히 키웠던 병아리들.

암튼 무언가 생명을 키운다는 것이 마냥 좋았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병아리는 얼마 못 가 죽었습니다. 아직도 미스테리인데요, 병들

고 약한 놈들을 판 건지, 원래 병아리는 살아 남기 어려운 건지, 중닭이 되도

록 끝까지 산 놈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누군 손때가 타서 그렇다 하고, 누구는

닭모이가 항문을 막는다고도 하고.. 모가지가 힘이 풀려 축 쳐진 병아리를 땅

속에 묻어 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나중에 천국에서 만나자...”

얼마 전 뉴스를 보니, 한 초등학교 아이들이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사서 아파

트 옥상에서 떨어 뜨린다네요. 누구 병아리가 더 오래 파닥거려 살아남는 지

내기하는 것이라니 놀랄 일이지요. 닭은 날지 못하는 새인 것을 모르는 것일

가요? 병아리들은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죽어 간다고 합니다. 벌레 한 마

리라도 함부로 다치게 할까 봐 조심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장난삼아 생명을

가지고 놀다? 하긴 사람 목숨도 그리 가벼이 여기는 세상이니 짐승들이야 오

죽할까요.

생명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서로가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긍휼(矜恤)이 그립

습니다.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