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음의 길 위에서

• 이야기 하나

<학교>라는 드라마가 끝났습니다. 승리고등학교 2-2반 학생들의 이야기입니

다. 그 또래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 아무래도 더 관심을 갖고 보았지요. 두 남

학생의 멋진 우정, 공부 때문에 울고 웃는 교실, 서로의 고민과 갈등, 훌륭하

신 선생님들, 도종환의 시처럼 그렇게 흔들리며 자라고 있는 내 아이들.

무엇보다 깊이 다가 온 건, 그 넓은 학교에 학생들은 많이 있지만 내 속내를

들어 줄 한 친구가 없다는 것입니다. 옥상에 올라간 그 공부 잘 하던 아이에

게도, 친구 스마트폰을 훔쳐 갔던 그 여학생에게도, 그 한 번도 웃지 않던 문

제 학생에게도, 과거 자살한 학생으로 인해 트라우마가 있는 선생님도... 모두

외로운 이들, 내 마음을 들어 줄 그 사람이 필요하다고 몸부림치는 듯 했습니

다. 절망의 벼랑위에 서 있는 욥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했던 세 친구들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입니다. 키는 작지만 눈이 커다란 그 담임선생님, 존경하고 또 존경합니

다. 그 눈으로 학생들을 보고 귀를 열어 들어 주시는 그 선생님들 계셔서 우

리 아이들이 한 고비 또 한 고비 넘어갑니다.

• 이야기 둘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하루 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을 듣습니다. 저는 그 시간

이 참 좋습니다. 때론 아내를 통해 듣습니다. 주로 아이들 이야기지요. 신났던

일, 치고 박고 싸운 일, 친구들에 대해, 공부하는 것에 대해. 아닌 게 아니라

점점 커 가는 세 아이가 걱정은 걱정입니다.

어느새 고2가 되는 큰 아이, 어느 집이나 같겠지요. 공부 때문에 걱정이 많습

니다. 늘 축쳐진 어깨, 쾡한 두 눈에 인생의 짐이 무겁게 얹혀 있습니다. 둘째

딸은 요즘 ‘틴탑’에서 ‘백퍼센트’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어리광 피는 동생을

고자질하고, 처음 배우는 기타 소리도 기꺼이 들어 줘야 합니다. 막내가 태권

도 시범을 보일 때는 어떻고요. 때론 춤인지 율동인지 구분이 안 갑니다. 입

을 꽉 물고 한 동작 한 동작 시범을 보일 때는 얼마나 진지한지요, 함부로 웃

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그때그때 무슨 적절한 말을 해 주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자세히 들어 주고 처방해 주는 것은 엄마가 주로 하지요. 아빠는 그저 “그랬

어, 우리 애기” 하며 장단을 쳐 주고 들어 줄 뿐입니다.

• 이야기 셋

고(故) 안명옥 집사님. 하늘도 눈물 흘리는 듯, 하루 종일 내리는 비와 함께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45년을 산 고인에겐 너무나 오랫동안 너무나 버거운 고

통이 있었지요. 입관하는 날, 세마포 옷으로 갈아입는 집사님을 보며 오히려

고통 가득한 육체에서 훨훨 놓임 받은 모습이었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내는

김집사님, 그것도 둘씩이나. 그 흔들리는 마음을, 그 떨리는 손을, 그 깊은 아

픔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요.

그런데 오열하는 집사님 곁에는 손을 잡아 주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정훈이

네 한솔이네가 보입니다. 이재환 장로님도 보입니다. 그리고 그 권사님 집사

님... 그러고 보니 사랑하는 식구를 졸지에 먼저 보냈던 분들입니다. 저들은

그렁한 눈물로 함께 울고 그 한 맺힌 마음을 들어 주며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 그 마음 안다고, 나도 그랬다고... 그냥 가만히 손을 잡

아 주고 들어 주는 것이란 얼마나 큰 위안인지.

예. 그냥 잠잠히 들어 주는 것입니다. 고통가운데 있는 이를 함부로 판단하거

나 가르치려는 것보다 불쌍히 여기는 순전한 마음으로 들어 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역사가 일어나리라. 마치 세상 물정 아무 것도 모르는 엄마

를 통해 오히려 위로받듯이 말입니다.

• 들으시는 예수님

제게도 그런 경험이 적지 않습니다. 그저 가만히 들어 주고 고개만 끄덕여 주

기만 했는데도 눈물을 흘리며 마음을 열던 성도들. 그런 때는 휴지를 건네주

는 것조차 그 분의 마음을 방해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습니다. 들어줌을 통해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깊이 신뢰하는 그 사람에게 털어 놓으면서 스스로 길

을 찾고 치유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하나님 음성을 잘 들으셨습니다. 또한 사람

들의 마음을 잘 들어 주셨습니다. 눈물로 범벅이된 향유를 뿌리던 여인의 마

음을 들어 주셨습니다. 세리의 겸손한 기도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두 렙돈을

헌금하는 가난한 과부의 마음을 받으시고, 수많은 군중속에서 부르짖는 삭개

오의 마음을 들으시사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고향에 어머니처럼 마음속에 작은 것까지 헤아리고 들어 주시는 분

입니다. 그래서 함께 있으면 괜히 수다도 떨게 되고, 속에 있는 것 자꾸만 얘

기하게 되고, 훌훌 다 털어놓아도 마음이 편한 분, 그런 분이 우리가 믿는 예

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양하지요.

♫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져줄 분은 없네, 내겐 주밖에 없네”

• 예수님의 음성듣기

헨리 나우웬의 <예수님의 음성듣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하루는 19살 어린 조카가 나우웬에게 묻습니다.

“삼촌, 예수님 음성을 어떻게 하면 들을 수 있어요?”

나우웬은 이 책에서, ‘이렇게 해 보면서 θ음성을 들어보라’ 구체적인 방법을

세 가지로 제시합니다.

첫째, 교회에 귀를 기울이라 합니다.

물론 교회가 아니어도 하나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말은 맞지요. 그러나

교회를 떠남으로 예수님께 더 가까워졌다는 사람을 아직은 만나 보지 못했습

니다. 그러나 사실 더 큰 문제는 교회는 다녀도 하나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못 듣고 못 봅니다. 주의 몸된 교회에서 예배를 통

해, 행사와 만남을 통해 신앙의 훈련을 잘 받아갈 때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교회가 중요합니다.

둘째, 성경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다른 신비적인 방법이 없습니다. 성경을

읽되 내 생각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생각대로 읽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내 음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셋째, 가만히 내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하나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장 친밀하게 말씀하시는 장소가 바로 우리 마음입니다. 기도는 그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거하시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대화는 말하는 것뿐

아니라 듣는 것입니다. 입으로 부르짖고 끝이 아니라 ‘어떻게 말씀하시나’ 그

음성을 듣는 것이 기도입니다. 말하기만 하면 안 됩니다. 들어야 합니다. 이렇

게 마음속으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기 위해 매일 구별된 시간을 가지라고 권

면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나의 입과 두 개의 귀를 주신 이유가 있다고 하지요.

말하기보다 듣기를 배로 하라는 메시지입니다. (Zeno, BC 336-264). 성도란

무엇보다 하나님 음성을 잘 듣고, 그 음성에 따라 살며, 그 음성에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음성은 신비스런 장소에서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

다. 때론 우리 가정의 그 일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내 몸의 질병을 통해 말씀

하실 때도 있습니다. 때론 나를 아프게 찌르는 그 사람을 통해서도 말씀하십

니다. 조용한 곳에서 간절히 기도드릴 때도 말씀하시고, 시끄러운 시장 바닥에

서도 어김없이 말씀하십니다. 때론 믿지 않는 남편을 통해서, 속 썩이는 자식

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귀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오늘도 들음의 길 위에서, 들으시는 예수님을 쫓아 갑니다.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