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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
이름 최현장
작성일자 2023-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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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서는 사람들


오뚝이처럼

저는 회사 중에 <오뚜기> 회사를 좋아합니다. 카레 때문에? 진라면? 케첩?

다름 아닌 그 이름이 좋아서요. 오뚜기. 아이들 장난감이지요. 오뚝이는 아무

리 굴리고 던져서 넘어져도 다시 일어섭니다. 바람에 눕지 않고 다시 일어서

는 풀잎처럼, 눌러도 다시 퉁겨져 올라오는 용수철처럼. 우리 인생이 오뚝이처

럼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오뚝이 하면 생각나는 선수가 있어요. 권투에 홍수환. 50세 이상 되신, 특히

남자분들은 그때를 기억합니다. 1977년이더군요. 저 멀리 남미 파나마에서,

WBA 주니어 페더급 초대 챔피언 결정전입니다. 상대 선수 카라스키야는 무시

무시합니다. 111111KO, 별명이 지옥에서 온 악마라나. 더구나 적

지에서 일방적 응원 속에, 홍수환은 처음부터 밀리지요. 2회에는 다운을 4

이나 당합니다. 이쯤되면 게임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는 기적처럼 일어납니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넘어지면 또다시 일어

나고. 말 그대로 오뚝이였어요. 그리고는 마침내 3회에 KO, 챔피언이 됩니

.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권투 경기가 생긴 이래 이런 일은 없었다고 해

. 경기를 생중계한 TBC는 그날 하루 종일 27번이나 재방송을 했다는군요.

훗날 홍수환 장로님은 이렇게 간증해요. “할아버지 때부터 잘 믿었던 신앙의

가문이 열매 맺은 것이라”. 실로 45기의 오뚝이 신화를 썼습니다.

 

넘어지는 인생

동물의 왕국을 보면 신기한 일들이 참 많지요. 그중에, 태어난지 얼마 안 된

새끼가 금방 걷는 것입니다. 바다 거북이는 해변가에서 알을 깨고 나오자마자

바닷물을 향해 마구 기어갑니다. 언제 기는 법을 배웠고 누가 가르쳐 주었을

까요. 천적에게 잡아 먹히지 않으려는 본능입니다. 말은 서서 분만을 하는데,

갓 태어난 새끼가 금세 일어나 뛰어다닙니다. 송아지는 태어난 지 10분여 지

나면, 기린이나 코끼리도 난 후 몇 시간이면 툴툴 털고 일어나 걷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은, 그렇지 못해요. 태어나서 걸으려면 시간이 적잖이

필요합니다. 누워서 옹알이하는 기간, 4-5개월에 겨우 뒤집기를 하고, 1

여가 지나서야 겨우 제 발로 한 걸음 뗄 수 있습니다. 그동안은? 일어섰다 넘

어졌다를 대략 5,000번 정도 반복합니다.

 

크면서도 수도 없이 넘어집니다. 달려가다가 돌부리에 넘어지지요. 자전거를

배우다, 운동을 하다 넘어집니다. 개구쟁이 남자분들은 무릎에 상처가 많아요.

모두 넘어져서 생긴 상처들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다 커서도 수도 없이 넘어집니다. 사람에 넘어지고, 돈에 건강

에 공부에, 그 일로 인해 넘어집니다. “넘어지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실로 흔들리고 넘어지며 피는 꽃,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넘어지는 것은 결코 실패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넘어지며 살지

. 다시 일어서는 과정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넘어지느냐가 아니라 다시

일어서느냐입니다.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

성도는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넘어짐이 죽음인

, 성도는 그 죽음에서 조차도 다시 일어섭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참 좋습니

.

(24:16)“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

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그때 그 군대 훈련소에서, 낙심되던 그 시험장에서, 젊은 시절 헤매던 서울 그

밤거리에서, 수술실에서. 그리고 영락교회 20여 년 목회 가운데에서도. 살면서

수없이 낙심하며 넘어져 있던 내게, 주께서 이 말씀으로 힘을 주셨습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이 말씀은 오뚝이나 홍수환 선수가 주는 교훈 정도가 아니었어요. 강력한 하

나님의 명령입니다. “최목사, 내 명령이다. 다시 일어서라. 내가 너와 함께 한

. 일어서야지

 

우리 주님은 넘어진 사람들을 골라서 찾아 오셨습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리고 뽕나무 위에, 성전 미문 앉은뱅이에. 그 옛날에도 얍복강가에, 호렙산 떨

기나무 사이에, 심지어 고래 배 속 그 깊은 절망의 자리에까지 찾아 오셨지요.

그들을 위로하시고 일으켜 주시사 다시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넘어진 자들을 찾아 오시는 주님, 이것이 우리 희망입니다.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 이것이 성도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사랑으로 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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