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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간의 질문과 하나님의 침묵
이름 최현장
작성일자 2023-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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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질문과 하나님의 침묵



어린아이들은 질문이 많지요. “이건 뭐야? 저건 왜?”. 질문으로 세상을 알아

가고 자랍니다. 여러분은 살면서 질문이 있으십니까? 신앙적으로는 어떠십니

? 자녀들이 신앙의 질문을 하면 어떻게 답하십니까?

그냥 믿어. 의심은 마귀야?”

 

도마는 의심했지만, 그 의심을 통해 오히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분명히 만나서,

훗날 인도를 선교하는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20세기 복음주의 예언자라 불리

는 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정직한 질문과 정직한 대답’,

잘 묻고 대답을 듣는 것, 이것을 신앙형성에 중요한 요소로 보았습니다.

 

교회, 묻고 답을 얻는 곳

교회에 새가족이 오시면 새가족 공부를 합니다.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주

제인 인간 하나님 죄 구원 교회에 대해서, 교사들과 제가 나누어 가르치면서

교회에 자리하도록 가이드 하지요.

 

얼마 전에 오신 새가족이 계신데 이번엔 평일에 공부를 했어요. 감사하지요.

바쁘신데 주중에 교회에 오셨습니다. 대신 여유있게 대화도 하고 좋았습니다.

이런 말을 해요. “목사님, 저는 질문이 많아요”. 뭘까? 왤까?

 

어릴 때부터 엄마와 교회에 열심이었어요. 본인은 오르간 봉사를 하기도 했대

. 그런데 엄마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어린 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상처였지요. 하나님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왜 열심히 교회도 다녔는데 이런

일이?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이런 의문을 가져서 그 후부터는 교회를 멀

리했습니다.

 

우리 교회 김권사님과 가까운 사이인데, 권사님에게도 많이 물었대요.

그 일을 생각하면 나는 아직도 하나님이 이해되지 않는다. ?”

그럴 만하지요. 급기야 권사님이 이렇게 권면했대요.

네가 교회에 와서 그 답을 찾으라.”

 

잘했지요. 인생의 문제, 신앙적인 문제에 옆에서 모두 답해 주기 어렵지요.

스로 묻고 깨달은 답에 힘이 있습니다. 저도 기도했어요. “주님 그 성도, 교회

생활을 통해 질문에 답을 찾게 해 주세요”.

 

그리고 교회를 생각했어요. “아 교회는 질문을 하고 답을 찾는 곳이다”. 병원

이 아픈 몸에 답을 주는 곳이라면, “교회는 인생의 문제 특히 영혼의 문제에

답을 찾는 곳이다”.

 

상관관계 신학(the method of correlation)을 주장한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가 말하지요. “상황은 질문이고 신학은 대답이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사람은 질문하고 하나님은 대답하신다”.

 

하나님의 침묵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묻고 부르짖어도 하나님의 대답이 없으신 것

입니다. 기도하면 금방 갈멜산에 불이 떨어지고, 빌립보 감옥 문이 열리면 좋

겠는데, 그렇지 않을 때가 있어요. ‘하나님의 침묵’,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나님, 왜 가만히 계십니까? 세상사에 대해, 내 인생에

대해, 기도에 대해 침묵하십니까?” 그 옛날 욥이나 하박국의 탄식입니다.

 

이 문제를 다룬 게 소설 <침묵>이지요. 엔도 슈사쿠. 16세기 일본 기독교에

엄청난 박해가 몰아칩니다. 수많은 순교자가 나왔어요. 예수님 얼굴 동판인 후

미에를 밟아 배교하지 아니하면 바닷물에 수장되고, 악독한 고문으로 죽어 갔

습니다. 포르투갈에서 파송된 로드리고 신부가 와 보니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저 무심한 바다처럼 침묵하시는 하나님이 원망스럽습니다. 지금도 나가사키

소토메 해변가에 세워진 그의 비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인간은 이다지도 슬픈데, 주여 바다는 너무나 푸르기만 합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수없이도 침묵하셨지요. 해방 78주년을 맞는데요, 일제 36

간 식민지 생활을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종살이를 400년이나 했습

니다. 그 동안은 하나님 침묵의 시간이었지요.

(15)귀신들린 딸을 둔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왔어요. ‘고쳐 주세요’.

주께서 하실 수 있지요. 그런데 한동안 아무 말도 않으십니다. “예수는 한 말

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15:23). 결국 고쳐 주시지만, 그녀가 이해할 수 없

는 주님의 침묵이 지난 후였습니다.

(4)광풍이 부는 갈릴리 바다, 제자들이 아우성치며 탄식합니다. 주님은?

배 안에 분명 같이 계시는데 침묵하십니다.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

니하시나이까”(4:38). 한참이 지나 풍랑을 잔잔케 하신 후에 말씀하십니다.

“...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4:40)

 

침묵과 기다림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습니다. 물론 더딜 때가 있어요. 침묵하시는 듯한 시

간이 있어요. 그러나 기다리라. 반드시 응하리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

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2:3)

 

나치가 유대인 학살을 위해 만든 가스실이 있습니다. 어른뿐 아니에요. 어린

애들까지도 넣어 죽였어요. 엄마 손을 잡고 가스실로 걸어가던 한 아이가 있

었습니다. 어리지만 죽는다는 걸 알지요. 무섭습니다. 엄마에게 묻습니다. “

,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나요?”

 

아 인류 역사에서 가장 혹독하고 가슴 아픈 질문일 것입니다. 어미가 무슨 대

답을 할 수 있겠어요. 이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 그때

엄마가 잡은 손을 다시 꼭 잡으며 대답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렇게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신단다

 

<침묵> , 그 마지막에 그리도 침묵하시던 하나님의 대답이 들려오지요.

밟아도 좋다... 그 발의 아픔만으로 이제는 충분하다. 나는 너희의 아픔과 고

통을 함께 나누겠다. 그것 때문에 내가 존재하니까

주여, 당신이 언제나 침묵하고 계시는 것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었을 뿐이다

(<침묵> 293-294)

 

질문과 침묵 사이

이러한 하나님의 침묵은 십자가에서 가장 극명히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마

지막 절규이지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부 하나님은 죽어가는 독생 성자 예수님에게도 침묵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침

묵 속에서도 일하시사,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우리에게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목사인 제가 평생에 믿어 온 하나님도, 많은 경우 즉각적인 응답이 아니라 침

묵하셨습니다. 그래서 답답할 때도 많았어요. “왜 침묵하시나? 왜 가만 계시

?”. 그러나 눈에 보이는 기적이 아니라 침묵하시는 방식으로 역사하셨습니

. 침묵 속에 위로하시고, 침묵 속에 함께 하시며 침묵 속에 일하셨습니다.

모든 풍랑이 거치고 나서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때와 방식이 있었구나. 기다려야 하는구나”.

인간의 질문과 하나님의 침묵 사이에 기다림이 필요했습니다.

 

내 인생의 배 안에도 주님이 계신 줄 믿습니다. 때론 침묵하시지만, 그래서 답

답하지만, 반드시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4)

 



/사랑으로 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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