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하나 밝히는 성탄

주님 오시는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절 마지막 네 번째 주일입니다. 강단에도

네 개의 촛불이 밝혀졌습니다. 이렇게 밝은 대낮이어서 그렇지, 캄캄한 밤이라

면 촛불이 아주 환히 빛나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에 초가 있습니까? 지금은 생선 굽고 냄새 제거할 때, 생일 축하

때 외에는 초를 잘 쓰지 않지만, 어릴 땐 참 요긴했지요. 전기가 자주 끊어져

서 촛불을 켰습니다. 고향인 먹뱅이 큰댁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등잔불을

켜고 살았습니다. 매달 15일 등화관제 훈련, 불을 다 끄면 몰래 촛불을 켜곤

했습니다.

그땐 초가 생활필수품이어서, 개업이나 집들이 선물로 양초세트를 하기도 했

지요. 추운 겨울, 어머니는 이불을 뒤집어 쓰시고는 형광등도 아깝다고 촛불을

켜고 성경을 보셨습니다. 덩달아 저도 그 곁에서 책을 보면 형설지공(?) 엄청

열심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손그림자놀이는 재미있었지요. 촛불 가까이에서

손으로 온갖 동물을 만들어 벽지에 비추는 놀이입니다.

신학교 때 사경회 혹은 MT를 가서 촛불 주위에 빙 둘러앉으면, 살포시 아늑

해지고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왠지 진실게임 해야 할 분위기? 캄캄함 속에

오히려 내가 보이고 그의 모습이 보입니다. 마음이 열려서 밤늦도록 이야기꽃

을 피웠습니다.

몇 년 전에 설악산 <추양하우스>로 전교인 수련회 갔었지요. 마지막 날 밤 캄

캄한 방안에 기도회를 한 후, 성도들이 촛불을 하나씩 들고 서로를 만났지요.

어둠 속에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한 두 마디, 그리고는 부둥켜 안아 주고

눈물로 기도해 주었습니다. 만약 그때 불을 다 켜 놓았다면, 아마도 못 했을

것입니다. 촛불이 주는 어떤 거룩하고 성스러운 분위기가 있습니다. 촛불의 힘

이라.

무엇보다 촛불은 항상 위를 향해 있다는 것이 유심하지요. 프랑스 철학자 바

슐라르(Gaston Bachelard)가 말했듯, ‘촛불의 수직본능’입니다. 바람 불면 잠

시 흔들리고 눕기도 하지만 촛불은 집요하지요. 곧바로 다시 일어나 하늘을

향합니다. 시인 김영천이 묻습니다. “내 심지는 저렇듯 곧은가?”. 저도 스스로

묻습니다. “나는 저 촛불처럼 늘 하늘 하나님을 향해 있는가?”. 우리 속에 하

나님을 향해 타오르는 불꽃이 없다면 흙덩이에 불과할 것입니다.

오늘 본당 뒤에 초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일반 양초가 아니라 성탄용 티라이

트(Tealight) 캔들입니다. 오늘 밤이 성탄이브인데, 마음만 산란해지는 TV 핸

드폰을 끄고 촛불을 켜 보는 것은 어떠십니까? 혼자여도 좋고 온 가족이 촛불

앞에 둘러앉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촛불을 켜고 한 해 돌아

보며 성탄으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가만히 있는 이에게 오시지 않습니다. 뭔가 거룩하고 성스러운 준비를

하는 곳에 오십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예배할 때, 그렇게 어두운 마음에 촛

불을 켤 때. 그곳이 주님 오시는 베들레헴 빈 마구간이 될 것입니다.

촛불 하나 밝히며,

더 깊고 깊은 성탄의 은총을 기다립니다.

<촛불의 미학>

-김영천-

마침내 굳어버린 가슴을 녹이고

마알갛게 흐르고

이제야 곧은 심지를 따라

기도하듯 하늘 오르는 불빛

내 심지는 저렇듯 곧은가

똑바로 서서

제 이성이나 소망이나 사랑이나

온갖 사유들을 일관되게 태워 올리는가

그래서 세상의 빛인가

파르르한 불빛으로도

제 아래 그림자만은 지우지 못하듯이

더러 흔들리며

더욱 낮아지며

깜깜한 세상을 의혹한다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