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도(5) 의존

• 연약한 인생

가끔 함께 신앙 생활하다 먼저 가신 교우들이 생각납니다. 먼저 가신 분들을

기억해 드리는 일, 담임목사의 주요한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기억을 통해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고 기억 속에 죽은 자가 산 자 안에 살아 있습니다.

돌아가신 고 유연자 권사님. 기도도 봉사도 참 많이 하시고 교우들 많이 챙기

셨지요. 성도들이 기도 부탁도 많이 했어요. 하루는 권사님이 아프셨어요. 병

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어 심방을 갔어요. 권사님이 깜짝 놀라세요.

“목사님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그 다음 말이 유별나십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세요”.

“아니 왜요?”

“아휴 챙피해요. 기도한다는 사람이 이렇게 아프고”

무슨 뜻인지는 알지요. 그 권사님은 그리 말씀하실 거 같아요. 권사님을 참 좋

아하고 존경하지만 그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도 아플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될 때 선배들로부터 이런 말 들어요. “목사가 아프다는 소리 하면 안

된다. 기도하지 않으니 아프고, 제 병도 못 고치면서 성도들 안수기도를 어떻

게 하겠느냐”.

그걸로 하면 저는 목회 실패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아픈 곳이 많습니다. 그

런데 사도바울 보세요. 연약한 것을 드러내서 고백합니다.

(고후12:7)“내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고후11:30)“내가 부득불 연약한 것을 자랑하리니”

그렇습니다. 인간은 연약한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이걸 인정해야 합니다.

• 의존하라

그러므로 어떻게 할까요? 이렇게 무거운 짐으로 연약한 인생인데.

성경은 길을 말씀해요.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라”.

(시55:22)“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

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신앙을 번지 점프로 비유해요. 의지할 것은 줄 하나입니다. 그 줄에 나를 내맡

기고 몸을 던집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믿고 전적으로 맡기고는, 그 믿음의 줄

을 붙잡고 뛰어내리는 것이라”. 그리하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때론 깊

은 골짜기로 떨어지기도 하고, 다시 퉁겨져 올라오기도 하면서 출렁이지만, 결

국은 쉼과 평안의 자리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주님도 보세요. 이 땅에 무슨 천사로, 강한 장수로 오지 않았어요. 우리와 똑

같이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해야 하는 아기로 오셨습니다.

놀랍지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누군가 먹여줘야 했고,

엉덩이를 닦아 주며, 굴러 넘어지려 할 때 받쳐 주어야 했습니다. 십자가 앞에

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괴로워 죽게 되었으니”, 중보기도를 요청하십니다. 골

고다를 오르실 때는 너무나 연약해지셔서 구레네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짊어

집니다. 결국 십자가에서 축 늘어진 팔다리에 못이 박힌 채 움직일 수 없는,

33년 전 아기 때 모습처럼, 전적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의존하는 상태가 되셨

습니다.

(눅23:46)“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의탁)하나이다”

이 전적인 의존의 믿음으로 십자가를 지시자 부활의 영광에 이르신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인생이랴! 하나님은 인생을 의존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주께 의존

하라, 더 의존하라,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의존하는 존재가 되

는 것이다”

• 서로 의존하라

그런데 주님께 맡김으로 자신의 짐을 해결한 사람은 사명이 있습니다. 서로의

짐을 지는 일입니다.

(갈6:2)“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여기 ‘서로’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가정에서 부부가 부모자녀가 서로에게, 교

회에서 목사가 장로에게, 성도가 성도에게. 내 짐을 그에게 부탁하라, 그의 짐

을 지라.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도, 무기력한 일도 아

닌 하나님 은총의 통로입니다. 그것이 가정과 교회를 세우신 주님의 뜻이고,

그것이 그리스도의 법을 온전히 성취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사랑과 보살핌과 보호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이 세상에

들어왔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의존하는 인생의 단계를 거쳐 간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다른 사람의 사랑과 보살핌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이 세

상을 떠날 것이다.

이것은 약하거나 참담한 현실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육체

적인 본성의 일부이며 하나님 계획의 한 면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짐

이 되도록 설계되었다. 당신은 내게 짐이 되도록, 나는 당신에게 짐이 되도록.

가족의 삶, 그리고 교회 가족의 삶 역시 ‘서로에게 짐이 되는’ 삶이어야 한다”

존 스토트 <제자도> 130쪽.

• 울어도 돼!

저는 이 글에 큰 위로와 은혜를 받습니다. 내가 가정에서 아빠로서, 교회에서

목사로서, 때론 아프고 실수하고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다는 것입

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울어도 돼 주님도 우셨는데. 뭐 남

자가 세 번만 운다고(?)”

우리를 연약하게 만드셨다는 사실, 서로 신세를 지고 신세를 갚는 과정에서

신앙생활의 참맛을 안다는 사실,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사실, 그러

라고 가정과 교회를 주셨다는 사실,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기도 부탁을 합니다. 내 짐을 맡기고 그의 짐을 져

줍니다. 서로 마음과 사랑을 나누며, 위로하고 위로받고, 짐이 무거운 고단한

인생길을 이겨 나갑니다.

“주님, 이 시간 주님께 내 짐을 맡깁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내 인생의 짐을

잘 지게 하옵소서. 또한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짐을 져 줌으로, 그리스

도 사랑의 법을 성취하게 하옵소서”.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