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더미에서 주운 금

• 난지도, 같은 서울 하늘아래

80년대 중반, 신학교 다닐 때 잠시 학보사 기자를 했었습니다. 그때 처음 취

재 나간 곳이 서울 마포에 있는 쓰레기 매립장 ‘난지도’입니다. 지금은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과 함께 생태공원이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난지도는 소망 없는

쓰레기 산이었습니다. 본디 난초와 지초가 많아 난지도라 이름한 것이라는데

요, 예전에는 땅콩이나 채소 등의 농사를 짓기도 했습니다. 오리가 많아서 압

도(鴨島), 풀과 꽃이 많아서 중초도, 10만여 철새들의 겨울나기 관문이어서 문

섬으로 불리던 아름다운 섬이었습니다.

그러나 1978년부터 난지도는 굴곡의 역사가 시작되는데요. 그때부터 90년대

초까지 십 수 년 동안 서울시민의 쓰레기 매립장이 됩니다. 더 잘 먹고 잘 살

게 된 것이 난지도에게는 고통스러운 역사를 안겨 준 것이지요. 거대도시 서

울에서 배출되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쌓여 점점 거대한 쓰레기 산들을 이루

었습니다. 그곳에 들어서니 파리에 먼지에 썩는 악취가 가득했습니다. 쓰레기

로 인해 침출수와 유해가스가 나와 주변 한강과 대기는 오염되어 환경오염의

불모와 죽음의 땅으로 불리었습니다. 그 쓰레기 산을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는

것이 얼마나 고역이었는지요.

그런데 그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오갈 데 없는 걸인

들이, 목동 재개발지역에 철거민들이 하나 둘씩 모여 들어, 작은 마을을 이루

고 있었습니다. 저들은 쓰레기 더미에서 돈되는 것을 찾아 먹고 살았습니다.

당시 임시로 조립식 가건물을 지어 수용소를 이루었는데요, 서너 평 정도 되

는 작은 단칸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수 백호를 이루었습니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이렇게 살 수 있을까!”

그런데 쓰레기 산에도 법이 있고 규칙이 있었습니다. 자기 구역이 있어서 다

른 사람의 구역에서는 일할 수 없습니다. 쓰레기더미에서 찾아 봤자 뭐가 있

냐 하겠지만, 잘사는 동네 쓰레기는 제법 값나가는 물건을 찾아 횡재할 때도

있었습니다. 종로같은 지역은 힘깨나 있든지 뒷돈을 줘야 차지할 수 있는 노

른자위(?) 였습니다. 어떤 집에는 쓸 만한 TV, 라디오, 냉장고 등이 있어 놀라

기도 했는데, 그것이 쓰레기 더미에서 주운 것들이었습니다. 인간 이하의 비참

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래도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이 서로 마음과 정을

나누며 사는 보금자리였습니다.

• 쓰레기 산에도 교회는 있었네!

아마 기장측 교회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산꼭대기에 있던 그 교회, 그곳 마

을 사람들 외에 다른 교인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주일이면 교회에 오시는 분

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목회하시던 전도사님을 통해 그곳의 어려움을 들었

습니다. 천막교회 십자가 아래 그 목사님은 쓰레기 더미 속에서 희망을 보셨

습니다. 쓰레기 산위에 세워져 있는 십자가는 절망 속에 빛나는 희망이었습니

다.

“목사님, 여기 진짜 장총찬이 살고 있어요?”

그때 김홍신 소설 <인간시장>이 베스트셀러였는데요, 이곳 난지도가 배경입니

다. 주인공 장총찬은 넝마주이하며 권법을 부리기도 하던 신비로운 존재였었

거든요. 영화에서는 배우 진유영이 그의 역할을 하는데, 하늘을 올려다 보며

대들 듯 외치던 장총찬의 음성이 눈에 선했습니다.

“하나님, 왜요? 왜 세상을 이렇게 만드셨습니까?”

천막교회 십자가 아래 전도사님과 함께 드렸던 예배. 병든 자에게라야 의원이

필요하듯, 이땅 가난하고 고단한 삶의 자리로 예수님께서 오셨음을 고백하면

서, 우리는 간절히 예배드렸습니다.

• 쓰레기더미에서 하늘공원으로

그러던 곳이, 90년대 초반부터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1993년에 쓰레기 매립지

는 폐쇄되었고 이후 월드컵 경기장을 중심으로 평화공원, 하늘공원, 노을공원,

난지천공원 등으로, 난지도는 새로운 탄생을 하게 됩니다. 현재 난지도는 서울

에서 가장 아름다운 녹지대 중 하나로 시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습니

다.

몇 년 되었지요. 저희 교회 성경공부반이 난지도에 갔었어요.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쓰레기 산이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요? 풍차로 바람을 이용해 발

전을 하고, 유해가스는 열병합발전소를 거쳐 주변 아파트에 전기와 난방을 제

공합니다. 매립가스를 이용하여 수소를 생산하는 것은 세계 최초라고 합니다.

이제 난지도는 동식물의 천국이 되었습니다. 각종 식물 곤충 야생조류 양서류

파충류 등이 삽니다.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가 서식하고 희귀종 말똥가리, 오

색딱따구리, 맹꽁이, 두꺼비, 족제비, 고슴도치, 고라니 등도 발견되었습니다.

죽었던 난지도가 생태 환경의 천국으로 되살아 난 것입니다.

쓰레기 더미에서 핀 꽃이라더니, 난지도가 바로 그곳입니다.

이런 뉴스도 있습니다. 요즘 쓰레기 자원의 재활용에 이어 도시 광산업, 즉 전

자 제품 쓰레기나 각종 폐기물에서 광물을 뽑아내는 산업이 주목받고 있다지

요. 쓰레기를 묻어 두면 쓰레기 밖에는 안 되지만, 그것을 발굴하고 뽑아낸다

면 광산 이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답니다. 일본 내에서만 자그마치 6500t의

금을 채취할 수 있는데, 그것은 세계 최대의 매장량을 가진 남아프리카 공화

국보다 많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일본만큼은 아니지만, 쓰레기 속에서 엄청

난 양의 자원을 캐낼 수 있다고 하니, 자원이 없다고 쩔쩔매던 나라들이 실제

로는 꽤 많은 자원을 보유한 나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http://www.joysf.com/3695955 <쓰레기의 인생역전> 중에서)

이런저런 소식들을 들으며 문득 생각합니다. 먼 훗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금을 모두 캐내었을 때, 우리나라에서 금을 생산하여 수출하는 시대가 오는

것은 아닐까? 쓰레기를 통해. 그러면 그건 정말 ‘쓰레기에서 주운 금’이 되겠

지요.

• 쓰레기에서 주운 금

<예수님처럼>에는 윌리엄 라스지(William Rathje)라는 쓰레기 연구 학자를 소

개합니다. 그가 설립한 쓰레기 프로젝트라는 기관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쓰레

기를 살핍니다. 그들은 쓰레기 매립지를 파헤쳐 미국인의 식습관, 복식(服飾),

경제 수준 등을 문서로 작성합니다. 실로 라스지는 쓰레기 속에서 의미를 발

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라스지의 기사를 읽다보니 얄궂은 궁금증이 일었다. 오물학자의 삶은 어떤

것일까? 오물학자가 강연하면 허튼소리(trash talk, 쓰레기소리)가 될까? 간부

회의는 폐물 검사(rubbish review)가 될까? 출장은 쓰레기 여행(junket)이 될

까? 업무에 대해 공상에 빠지면 그 부인이 지저분한 생각 집어치우라고 할

까?...

우리도 똑같은 태도를 배운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삶에 찾아오는 쓰레기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고 생각해 보라. 사실 당신도 당신 몫의 쓰레기를 참아

내고 있지 않은가? 교통체증, 컴퓨터 고장, 휴가 연기...병원 치료비, 이혼 서

류, 월급 삭감, 배신, 트럭 가득한 슬픔이 당신에게 쏟아 부어질 때 당신은 어

떻게 하는가? 라스지의 사무실 벽에는 그가 어느 신문에서 건진 기사 제목이

액자에 담겨 걸려 있다. “쓰레기더미에서 주운 금”. 이 오물학자는 쓰레기에서

보석도 건지고 있다.

(Max Lucado. <예수님처럼>, 133-134쪽 중에서)

따지고 보면 우리 주님도 그러하셨습니다. 쓰레기 같은 인생의 병자들 죄인들

창녀들 속에서, 보석 같은 한 영혼을 발견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재난이라

여긴 것을 그 분은 은총의 기회로 보셨습니다. 인생의 끝이라 여기던 죽음조

차 부활과 영생의 시각으로 바라 보셨습니다.

인생은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는 쓰레기에서 주운 금과 같은 존재입니다.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