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 같은 교회

• 펌프가 있던 풍경

마중물! 우리 교회에는 아주 익숙한 단어이지요. 중고등부 학생회 이름이 마

중물입니다. 연초가 되면 하는 저들의 발표회는 ‘마중물의 밤’이었습니다.

언제부터 그 이름을 쓰기 시작했을까요. 누가 그 이름을 제안했을까요. 참

예쁜 순우리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 마중물을 사용했지요. 지금이야 다 사라졌지만 집마다

펌프가 있었습니다. 상수도가 없었던 시절이기에 펌프가 요긴했지요. 펌프질

을 힘차게 몇 번하면 쇳내 나는 땅속물이 꽐꽐 쏟아져 나왔습니다. 압력을

이용한 원리겠지요. 그렇게 끌어 올린 물로 씻기도 하고 먹기도 했습니다.

‘등멱’(등물) 했었잖아요. 더운 여름 웃통을 벗고 펌프 아래 엎드리면 등에

시원한 물을 끼얹어 더위를 쫓았습니다. 겨울엔 꽁꽁 얼어붙은 펌프에 뜨거

운 물을 부어 녹이면서, 펌프질을 해야 물이 나왔지요. 그러다가도 잠시 가

만있으면 금방 물이 빠져서 다시 물을 붓고 펌프질을 해야 했습니다.

아직도 물을 넣고 펌프질 하는 일이 새록새록 합니다. 거기에는 적당한 요

령과 순발력이 필요했지요. “그 덕에 지금 어깨가 튼튼해졌다(?)”

그때 그렇게 먼저 펌프에 붓는 한 바가지 물을 ‘마중물’이라 불렀습니다.

마중물! 말 그대로 하면 ‘마중 나가는 물’이라. 지하에 맑고 풍성한 물을 데

려 오기 위해 마중 나간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영어도 재미있어요. calling water, ‘부르는 물’이라. 더 많은 물을 부르는 물

입니다. 마중물은 어두운 땅 속 깊은 곳에 내려가, 꾸욱 엎드려 숨어 흐르는

물줄기를 부릅니다.

• 사막과 마중물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을 걷던 어느 나그네 이야기입니다.

그는 물이 없어서 죽게 되었지요. 그때 저 멀리 오아시스를 발견했습니다.

신기루가 아니었습니다. 죽음의 사막에서 오아시스는 생명입니다. 타는 목마

름으로 그 곳에 가보니 웬걸요, 덩그러니 펌프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옆에

마중물 한 바가지.

그리고 이렇게 쓰여 있었지요.

“이 마중물을 마시면 우물물은 영원히 마실 수 없습니다. 이 마중물을 펌프

에 넣고 물을 퍼 올리십시오. 마시기도 하고 목욕도 하고 빨래도 하고, 떠가

시기도 하십시오. 그리고 뒷사람을 위하여 마중물 한 바가지를 떠놓으십시

오.”

나그네는 목말라 죽게 된 상황에서 고민했습니다. 이 물을 마시면 한 순간

은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펌프에 이 물을 넣었는데 나오지 않으면

목말라 죽게 됩니다. 마중물을 넣고 물이 나오게 돼야 풍성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성격이 급한 나그네라면 앞뒤 재지 않고 그 물을 벌컥벌컥 마셔 버리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아무리 목이 말라도 그 물을 결코 마

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 물은 마시라고 남겨진 것이 아니라 펌프 위에 부으

라고 남겨진 것일 테니 말입니다. 그 한 병 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과감히

펌프 위에 그 물을 붓는 순간 나그네는 펌프를 통해서 빨려 올라오는 더 많

은 물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고민하던 그는 목말라 죽을 것을 각오하고 마중물을 펌프에 넣었습니다. 그

리고 펌프질을 하였습니다. 물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음껏 물을

사용하고 물통에 담고 낙타에게도 먹였습니다. 그리곤 다시 마중물을 떠놓

고 가던 길로 떠났습니다.

그가 남겨놓은 마중물은 단 한 바가지일 뿐이지만, 이로 인해서 다음 나그

네 그 다음 나그네,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풍성한 물을 얻을 것입니다.

<마중물>

-차영섭-

펌프 아래 으슥한 곳에

힘 잃은 우물물을

건지려고

옷 벗고 내려가는 마중물.

손을 길게 뻗어

우물물을 붙잡고

끌어 올리니

물의 꽃이 핀다.

나는 누구의

한 바가지 마중물이 되어서

생명과 평화의 갈증을

가셔 줄 것인가.

• 마중물 같은 교회

이런 눈으로 성경을 보니 마중물을 닮은 선진들이 참 많습니다.

노아는 온 세상이 죄악으로 창궐할 때 새로운 세상을 여는 마중물이었습니

다. 모두가 허장성세 바벨탑을 쌓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새

로운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시작하는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새 이스라엘을 열어 갔던 야곱, 나와 내 집만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겠

다던 여호수아,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인 사무엘, 엘리야때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남은 자 7천명, 모두가 그 시대 마중물 같은 사람들입니다.

신약에도 이방선교의 문을 활짝 연 사도 바울, 계시록에 인침을 받은 ‘십사

만 사천’(?) 성도들까지,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을 열어 갈 하나님 나라의 마

중물들입니다.

돌아보니 내 곁에도 마중물 같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한평생 주시기만 하신 부모님은 마중물을 닮으셨네요. 바른 길로 인도해 주

시던 마중물 선생님들도 떠오릅니다. 마중물 같은 교회들, 마중물이 되었던

친구들... 절망의 깊은 골짜기에 방황하던, 그 답답한 내 심연(深淵) 속으로

한 바가지 마중물로 찾아와 끌어 올려 주신 분들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주님은 부활과 영생의 하나님나라를 우리에게 열어 주신 영

원한 마중물이십니다. 어느새 물 빠진 펌프처럼 하나님과 단절되어 살아가

는 내게, 서로 상처주고 갈라져 멍든 너와 나에게, 십자가는 서로를 연결시

켜 생명을 솟게 하는 마중물입니다.

마중물 같은 수많은 분들 계셔 내가 여기까지 왔듯, 나 또한 그 누군가에게

마중물이 되고 싶습니다. 전쟁의 소문이 무성한 이 시대, 이 땅의 교회들이

참 평화의 싹을 틔울 마중물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원주영락교회가 목

말라 죽어가는 세상 속에서, 참 생명과 소망을 샘솟게 하는 한 병 마중물이

되길 꿈꿔 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