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거룩한 순례길(Pilgrim's Trail)

• 쉼이 필요한 세상

8월을 맞았습니다. 정말 덥네요. 휴가 행렬이 저기 보입니다. 뉴스에서는 벌써

부터 공항이 붐비고 고속도로가 막힌다고 요란하네요. 어릴 때 듣던 말 중에,

“선진국 사람들은 휴가가려고 일하고 휴가 가려고 직장 다니는 사람들 같다”

했었지요. 우리가 지금 꼭 그런 듯싶어요. 여기 저기 더위를 피하러 가는 차들

로 붐빕니다.

물론 일하는 것이 미덕입니다. 일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기계가 아닌 이상 쉼과 휴식을 가져야 하지요. 일만 하는 것으로 건강

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현악기가 제 소리를 내려면 줄을 맞춰서

팽팽해야 하지만, 연주가 끝나면 곧바로 줄을 풀어 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

면 축 늘어나서 다시 줄을 당겨도 제 음색을 내지 못하게 됩니다. 당기는 것

도 중요하지만 풀어 놓는 것도 중요한 것이지요.

엘리야를 보세요. 죽기를 구할 정도로 탈진(burnout)되자 하나님께서는 시냇

가로 이끌시사 먹고 마시고 잠자게 하셨습니다(왕상19장). 그렇게 충분한 휴식

뒤에 엘리야는 다시 힘을 내서 남은 자 칠천과 함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만화책 코너>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지성의 요람, 그것도 최고 대학의 도서관에 웬 만화냐 하겠지만, 어렵고 딱딱

한 전공서적만 대하다가 만화책으로 좀 쉰다는 뜻으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

다고 합니다.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땅도 산하도 쉬어야 합니다. 오래 전 이야기인데요, 김

포공항 신대로(新大路) 주변에서 논농사를 짓던 농민들이 국가에 손해배상소송

을 냈습니다. 대로가 나던 해부터 벼수확이 확 줄었기 때문이라는데 그 이유

인즉슨, 새로난 큰 길 가로등들 때문에 벼가 제대로 쉬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

답니다. 예? 말도 안 된다고요? 결국 그 재판에서 농민들이 이겼습니다.

설악산 같은 명산들은 안식년 제도가 있습니다. 얼마 동안은 입산금지를 해서

산에게도 휴식을 주는 것이지요. 세계 유명한 국립공원들은 모두 안식년 제도

가 있다고 합니다. 산의 안식년이라니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 모르나 사실은

그래야 사람과 자연 모두가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 안식, 종말론적 소망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쉴 새 없이 분주한 사역에 쫓기며 길을 가다가, 서두

르는 제자들에게 잠시 길을 멈출 것을 제안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바라보라! 들에 핀 백합화를 좀 바라보라!"

그렇습니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휴식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질서

입니다. 하루의 쉼을 위해 밤이 있고, 힘찬 한 주일을 위해 주일의 안식이 필

요하며, 여름의 휴식을 통해 일 년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쉼은 차로 한다면 브레이크와 같습니다. 열심히 달리는 것도 중요하

지만 브레이크로 속도를 조절해야 하지요. 노래로 한다면 쉼표와 같습니다. 계

속 부르기만 할 수 없습니다. 중간 중간 쉬었다가 불러야 끝까지 부를 수 있

습니다. 글로 한다면 쉼은 마침표와 같습니다. 계속 이어서 쓰기만 할 수 없지

요. 마침표를 찍고 다른 글, 다른 문단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종말론적으로는 재림을 통해 영원한 안식이 시작되는데, 그것이 창조의 목표

요 완성이라고 몰트만(J. Moltmann)은 말합니다. 종말은 우리가 흔히 무서워

하는 비극적 시나리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땅을 만드신 뜻이 완전히 이

루어지는, 에덴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에게 안식은 그냥 가만히 쉬는 것이 아니

었습니다. 안식은 창조의 마침이요 완성입니다. 영원한 안식은 주께서 재림하

시는 날, 천국에서 주어질 종말론적(eschatological) 소망입니다.

“창조의 ‘완성’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하느님의 휴식’에 있다. 그것은 휴식

을 통한 완성이다. 하느님의 휴식으로부터 일곱째 날의 축복과 성화가 온다.

창조의 사역은 창조자의 휴식을 통하여, 그의 노동은 안식일의 성화를 통하여

완성된다” (J. Moltmann. <창조 안에 계신 하나님>, 398쪽)

• 휴가 때의 기도

이솝 우화에 나오는 <개미와 베짱이> 신판이랍니다. 여름 내내 개미는 열심히

일하고, 베짱이는 노래를 부르며 놀은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달랐

습니다. 개미는 너무 열심히 일만을 했기에, 겨울 내내 신경통과 만성 피로 증

에 시달리며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습니다. 반면에 베짱이는 탁월한 노래 솜

씨 때문에, 음반을 취입했는데 그 음반이 대박 나서 편안하게 겨울을 보냈다

는 이야기입니다.

<개미와 베짱이> 교회판도 있는데요, 개미가 질병의 아픔 속에서 하나님을 믿

게 되었고, 결국에는 교회에 나가 목사님에게 안수 기도를 받고 그 질병이 모

두 나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열심히 일하여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베짱이

는 출반한 음반이 대박이 나서 돈과 명예를 모두 얻어 유명한 연예인이 되었

지만, 그는 자신의 돈으로 술과 마약을 즐기다 몸이 망가지고, 도박으로 가산

을 탕진해 다시 거지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행복한 삶에는 적당한

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주 만물은 쉼을 통해 회복될 때, 다시 달릴

수 있고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쉬는 것도 거룩한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 육신은 한계가 있습니다.

너무 피곤하지 않도록 안식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너무 지치지 않도록 잘

가꿔야 합니다. 자신의 몸은 자신이 잘 압니다. 이번 여름에 분주한 일정을 잠

시 내려놓고 쉼의 시간을 꼭 갖도록 하십시오.

이해인 수녀는 <휴가 때의 기도>에서 이렇게 읊조립니다.

...(중략)

휴가의 순례길에서

저희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좀 더 고요하고 슬기로운 사람으로

새로워질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넓디넓은 바다에서는

끝없이 용서하는 기쁨을 배우고

깊고 그윽한 산에서는

한결같이 인내하는 겸손을 배우며

각자의 자리에서 성숙하게 하십시오

항상 곁에 있어 귀한 줄 몰랐던

가족, 친지, 이웃과의 담담한 인연을

더없이 고마워하며 사랑을 확인하는

은혜로운 휴가가 되게 해주십시오.

이번 주간 좀 쉬다가 오겠습니다. 쉼의 거룩한 순례길(Holy Pilgrim's Trail),

너무 거창한가요?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 동산에서 신의 숨결을 느낌으로, 영

성(spirituality)이 더욱 새로워 지기를 소원합니다.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