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무엇을 찾고 있느냐?”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교회와 성도 여러분들이 기도해 주셔서 유럽 성지순례 잘 다녀왔습니다. 이번

여행은 유럽 몇몇 나라의 문화와 신앙유산을 더듬어 보는 길이었는데요, 프랑

스→스위스→이태리→영국 순서로 다녔습니다.

10일 동안의 여정은 생각보다 빡빡했습니다. 수천 년 된 고도(古都)들을 하루

이틀에 보아야 했기에 십여 일의 기간은 너무나 짧게만 느껴졌습니다. 특히

이태리는 로마만 해도 몇날며칠을 보아도 부족할 엄청난 신앙유산을 가지고

있기에 속 깊은 곳까지 보지는 못한 듯싶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도 주어

진 일정에 따라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파리의 세느강변에서, 로

마 구석구석에서...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담아 가고자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고 뛰어 다니던 자리들. 그것은 수만리 이국나라의 역사적인 자리 뿐 아니

라 나 자신을 돌아보는 유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 프랑스 파리

파리에 우뚝 선 개선문은 그 위용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아치에 새겨진 558명

의 장군들 이름이며 에뚜알 광장, 무엇보다 바닥에 무명용사를 기리는 ‘꺼지지

않는 불(Flame of Remembrance)’은 자유와 평화를 염원하는 인류 공통의

소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개선문에서 이어지는 그 유명한 샹젤리제 거리, 콩코

드 광장, 루브르 박물관 등에는 유럽의 오랜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간직되

어 있었습니다. 특히 루브르 박물관에서 본 밀로의 비너스 상과 모나리자 그

림은 잊을 수 없습니다. 평온함과 은은함, 잔잔한 미소. 그리고 생각보다 작은

모나리자.

“정말 모나리자 눈이 나를 따라올까?”

정신없이 목을 빼고 바라보다 도둑에게 지갑이 털렸습니다.

(이건 진짜에요. 아까운 100유로. 그 바보같은 사람이 바로 나였어요. 아내에

게 실컷 말 듣고. 나쁜 프랑스 도둑×).

에펠탑과 그 야경은 명성 그대로 너무나 아름다워 세계 수많은 곳에서 온 관

광객들의 탄성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세느강을 유람하는데 해

설방송으로 한국어가 나왔을 때의 기쁨이란.

“우리 대한민국 사람에요!!”

• 스위스 융프라우

프랑스를 떠나 테제베(T.G.V)를 타고 4시간여 가니 스위스 인터라켄에 도착했

습니다. 여기에서 해발 4,000m가 넘는 유럽의 지붕, ‘융프라우’(Yungfrau)를

올랐습니다. 물론 걸어서가 아니라 기차를 타고. 산기슭마다 동화 같은 마을

들, 마을을 감싸고 서있는 봉우리들, 넓게 펼쳐진 푸른 초원과 백색이 양떼들

이 어우러져 마치 그림엽서 같은 정경들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집니다. 어느 고

개에서는 얼마나 눈이 많이 내리는지 10월의 크리스마스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다다른 융프라우 꼭대기. 100여 년 전에 거대암석을 뚫어서 터널을 만

들고 수천미터 기찻길을 만든 스위스인들, 그 덕택에 이렇게 편안하게 만년설

과 천혜의 알프스 산야를 볼 수 있었습니다. 현대에 그 개발을 했다면? 아마

환경문제로 큰 반대가 있지 않았을까요.

• 이태리 로마

스위스에서 곧바로 이태리에 넘어 왔습니다. 찌를 듯한 첨탑의 밀라노 두오모

성당, 중세 르네상스의 발생지 피렌체, 그리고 <베니스의 상인>으로 유명한

물의 도시 베니스를 들렀습니다. 그리고 남부로 내려와 나폴리, 폼페이, 소렌

토를 보았습니다. 특히 폼페이는 상하수도 시설은 물론 사우나에 창녀촌까지,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하루아침에 없어져 버리기까지 그 화려했던 옛 모습

을 그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도시들도 폼페이의 최후를 향해 가

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려운 마음으로.

그리고 들어온 로마. 맨 먼저 바티칸 시국(Citta del Vaticano)이 우리를 기다

렸습니다. 바티칸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주권국가이지만 그가 가진 문화예술

의 힘은 적지 않았습니다. 가톨릭의 총 본산 바티칸과 박물관, 성 베드로 성당

때문입니다. 아침부터 서둘러 일찍 출발했지만 월요일인지라 각국에서 온 관

광객들로 장사진을 이루었습니다. 바티칸 박물관내 시스티나 성당에서 본 천

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그 화려함이 회화의 극치라 불리는 작품들. 미켈란젤로

가 15년 동안이나 공중에 매달려 그렸다 하니, 그 수고만으로도 그림에 대해

문외한인 나를 감동시켰습니다. 그리고 변함없이 이런저런 호기심이 발동했습

니다.

“덧칠해서 옷을 입히기 전 나체로 그려진 예수님 모습은 어떠했을까?”

이어져 있는 성 베드로 성당.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로마에서 순교한 사도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그 웅장한 높이와 넓이 앞에서 무릎

을 조아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교황들의 조각화들,

신격화된 듯 성모 마리아 상 등은 같은 뿌리를 가졌지만 서로 다른 개신교

(Protestant) 목사에게 약간의 거부감이 든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리고

입구에서 만난 피에타(Pieta) 상. 천재 미켈란젤로는 돌주무르는 재주가 있었

는지, 마리아의 섬세한 손과 옷주름결에 이르기까지 죽은 큰아들 예수님을 품

에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기만 했습니다.

이밖에 포로 로마노, 판테온, 트레비 분수를 거쳐 마지막 지점인 콜로세움

(COLOSSEUM) 앞에 섰습니다. 고대 로마의 상징인 콜로세움은 로마시대(70

여년경)에 건축된 거대한 원형경기장이지요. 거기에서 수백 년 동안 검투사들

과 노예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무엇보다 그곳은 신앙을 지킨 성도들이

맹수의 밥이 되어 순교한 곳이기도 하기에 목이 메고 가슴이 저려 왔습니다.

콜로세움을 끝으로 로마 여정을 마쳤습니다. 카타콤과 아씨시의 프란체스코

수도원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다음에 순례할 것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

습니다.

로마를 떠나며 이곳 그 어디엔가 있었을 바울이 감금되었던 감옥, 바울의 편

지를 받았을 로마 교회를 그려 보았습니다.

“저기쯤에 브리스가 아굴라가 살았던 집이 있지는 않았을까?”

그리스도 복음의 첫 전령자였던 사도 바울, 로마 하늘 아래 그가 헐떡이며 뛰

어 다녔을 골목골목에, 2천년이 지나 저 멀리 동방에서 찾아 온 개신교 목사

가 서 있었습니다. 주께서 그 골목에서 이방인인 내게 물으셨습니다.

“너는 무엇을 찾고 있느냐?”

끝으로 영국 런던에 대영박물관과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보는 것으로 순례 여

정을 모두 마치었습니다.

• “너는 무엇을 찾고 있느냐?”

성지순례(巡禮)! 물론 성서의 바로 그 땅들은 아니었지만 기독교 교회 역사가

살아있는 또 하나의 성지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지금 성지의 강산도

세월도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 땅의 주인 또한 수없이 바뀌었고 오늘날 살

아가는 방식도 그때와 같지 않습니다. 그 수없이 기나 긴 역사 속에 켜켜이

엉켜 붙은 흔적들, 역사의 층위들을 뚫고 나는 무엇을 바라보아야 했고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로마 그 거리에서 “너는 무엇을 찾고 있느냐?” 고 내게

물으셨던 하나님의 질문에 나는 뭐라 답해야 할까요?

성지(聖地), 성지에 가보니 정말 거룩한 땅은 거기에 없었습니다. 그 옛날 거

룩한 땅이었던 그곳은, 과거에 성지였을 뿐 지금 더는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과거의 거룩함과 화려함을 가지고 장사하는 곳일 뿐이었습니다. 성지중에 성

지라 불리우는 이스라엘에 가도 그렇지요. 예루살렘은 거룩하고 평화로운 땅

이 아니라 어느새 세속적인 전쟁의 땅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여, 하나님을 만났던 과거의 거룩한 땅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하나님

과 만나는 오늘의 성지였습니다. 지나간 바람은 결코 춥지 않습니다. 그 옛날

아무리 매섭고 혹독한 바람이 불었다 할지라도, 지나간 바람은 아무 힘이 없

는 법이지요. 성지는 저 멀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내 삶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과 동행하며 사는 곳,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통치하시며 그곳에 교통하

시는 곳, 봉산동 내 가정과 교회, 이곳이 다름 아닌 성지요 성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지순례란 ‘과거를 찾는 여행’이자, 곧 ‘현재를 통해 과거를 해석하는

여행’이라 함이 맞습니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읽고, 현재의 창을 통해 과거를

재해석함으로써 내 믿음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를 더욱 공고히 하는 실

천적 고백 말입니다. 새로운 땅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새로운 눈을 가

지는 것, 십여일 동안의 성지순례를 마치고 원주에 가까이 올수록 드는 생각

이었습니다.

“진정 무엇인가 발견하는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

지는 데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

/사랑으로 샘물

(2013,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