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 산타 성당과 마틴 루터

이번 성지순례에서 가보지 못한 아쉬운 곳들이 몇 있습니다. 종교개혁 발상지

독일 비텐베르크 교회, 프랑스 남부 떼제공동체, 스위스 제네바 WCC(세계교

회협의회) 본부, 그리고 이태리 로마 등을 좀 더 꼼꼼하게 봐야 했는데 일정상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로마 근교에 있다는 카타콤과 아씨시 성 프란체스

코 수도원, 그리고 스칼라 산타 성당을 보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립니다.

그 가운데 좀 생소하지만 ‘스칼라 산타’ 성당은 로마시 안에 가까이 있어 쉽게

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 성당은 성 베드로 성당에 비하면 한없이 작고

허름하며 성당 같지도 않은 일반 건물처럼 생겼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유

명해서 가톨릭 순례자들이 꼭 들르는 곳입니다. 그 이유는 역사적, 예술적, 종

교적 그림을 많이 소장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계단’ 때문입

니다. ‘스칼라 산타(Scala Santa)’는 ‘거룩한 계단’이라는 뜻인데요, 예수께서

재판 당하실 때 빌라도가 앉았던 자리까지 올라가셨다는 계단에서 기원합니

다. (요19:13절)에 보면,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했습니다.

• 거룩한 계단

로마시대 유대 총독이었던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시기로 고소당한 예수님을 심

문하였으나 아무런 죄도 발견하지 못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중들에게

적당히 만족을 주어 사건을 마무리 하고자, 죄없으신 예수님을 채찍질하여 피

투성이가 되게 한 다음에 군중들 앞에 세웁니다. 하지만 피를 본 이리떼 군중

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쳐 대니, 군중들을 두려워한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 줍니다. 결국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에서

죄 없이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됩니다. 바로 이 계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사실

들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거룩한’(?) 계단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인 성녀

헬레나가 326년에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가져 왔으며, 성년인 1450년에 현재

의 모양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 작업을 맡은 도메니코 폰타나는 28개의 이 대

리석 계단을 나무로 싸고 찬송과 기도에 맞추어 계단을 쌓았는데, 작업 인부

에 의해 층계가 다치지 않도록 하려고 위에서부터 시작하였으며 무릎만 닿게

하였다고 합니다. 후에, 이 성당은 교황 전용의 소예배당이 되었고 일반 신부

들은 교황을 알현하기 위하여 무릎으로 이 계단을 오르도록 하였습니다. 예수

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자신의 죄를 고행으로서 극복하도록 하기 위해서 였다

는 것이지요.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이 계단을 찾는 신자들로 하여금, 기

도하며 무릎으로 오르는 오랜 전통이 된 것입니다.

• 루터의 몸부림

뜬금없이 이 스칼라 산타 성당이 생각난 것은, 종교개혁 496주년 기념주일을

맞아 이곳이 개혁자 마틴 루터와 연관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루터(M.

Luther)는 엄격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라나 1501년에 에르푸르트 대학교

(University of Erfurt)에서 법률을 공부했습니다. 친구와 함께 길을 가다 낙

뢰(落雷)로 그 친구가 죽은 것이 그의 생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지요. 결국 루터는 죄와 죽음의 문제를 고민하다 학업을 중단하고,

에르푸르트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들어가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비록

신부였지만 자신 안에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몸부림치고 있었습

니다. 영적 스승이었던 수도원장 스타우피츠(J. Staupitz)는 고해성사를 하기

위해 워낙 자주 찾아오는 루터가 부담스러워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살인이나 간음죄가 아니면 내게 오지 말라.”

그때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 스칼라 산타 성당의 계단을 신성시했습니

다.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 오르내리면 죄사함을 받고, 심지어 연옥에 있는 죄

인도 이곳에서 기도하면 구원받는다” 라고 가르쳤던 것이지요. 루터가 이것을

놓칠 리 없습니다. 죄로부터 놓임을 얻기 위해 로마를 찾아 이 성당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 오르내렸습니다. 한 계단 한 계단 옮길 때마다 주기도문을 외

우며 계단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수없이 오르내려 보아도 아무

것도 해결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죄의 문제는 더 깊어만 갔습니다.

• 오직 믿음으로

그때 갑자기 섬광같이 성경 말씀이 들려 왔습니다.

(롬1:17절)“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루터는 여기서 깨닫게 됩니다. 죄의 문제는 면죄부도 아니고 고해성사도 아니

고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내리는 고행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해결 될 수

있음을. 그후 루터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개혁의 목표가 되어야 함을 알고,

“오직 믿음으로(sola fide)"를 외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종교개혁 496주년이 되는 오늘, 루터의 고뇌가 서려 있는 그 자리, 영혼 깊은

곳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던 그 자리가 그립습니다.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