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의 미학(美學)

-대림절 촛불을 켜며

• 성탄트리 없는 성탄절

“집사님, 올핸 성탄트리 하지 말지요. 경제도 어렵다는데요”

“예 목사님, 작년에도 안했잖아요”

“그랬나요? 한 번 장식하려면 얼마 정도 들어가지요?”

“한 60-70만 원 이상은 들지요”

“우와~ 집사님 우리 그걸로 힘든 사람들 도와요”

“예, 그러세요”

방금 관리부장 강천희 집사님과 통화한 것인데요, 이렇게 올 성탄에도 우리

교회를 휘두른 멋진 트리는 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절약한 것으로는 <사랑

의 국수>나 <사랑의 연탄>으로 따스한 마음을 나누겠습니다.

대신 예배당 안 강단에는 소박하게나마 장식을 하겠습니다. 늘 하던 대로

오른쪽에 소나무 트리와 왼쪽에 대림절 촛불 말입니다. 아쉽지만 이 정도로

해서 성탄 분위기를 내면 될 것 같아요.

특히 매 주 하나씩 켜지는 대림절 촛불을 통해, 오시는 주님(Das Kommen

Gottes)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 참 생명의 빛으로 오신 주

님을 기억하고 또한 그 주님이 오늘 나의 삶에 임하시기를 기다리며 예배하

기 위함입니다.

작년에도 권사님들이 촛불을 밝히는 거룩한 예식을 담당하신 것이 기억납니

다. 주일 예배를 시작하면서 곱게 한복을 입고 강단에 올라 촛불을 하나씩

밝히신 것이지요. 성탄절에 중앙에 커다란 아기예수 촛불(Christ Candle)을

밝히기까지는, 모두 다섯 개의 촛불을 켜게 됩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촛불마다 각기 이름이 있습니다.

• 대림절(Advent) 촛불

첫째 주일에는 <기다림과 소망>의 촛불입니다.

임마누엘 메시아 오심을 대망하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함을 나타냅니다. 이

는 지치고 곤고한 이들, 어두움에 있는 자들에게 소망이 되는 빛입니다.

(읽을 성경/ 사11:1-10)

두 번째 주일은 <회개와 평화>의 촛불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잘못된 모습을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

질 수 없게 하는 잘못된 사회를 꼬집으며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를 찾아 나

서는 의미입니다.

(읽을 성경/ 마5:13, 마25:41-45, 요8:12)

세 번째 주일에는 <사랑과 나눔>의 촛불을 밝힙니다.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가 같이 사랑을 나누고 나의 몫을 나누는 실천적

의미의 촛불입니다. 우리 주변에 상처 입은 이웃들, 배고픈 이웃들, 외로움

에 쓸쓸한 이웃들에게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읽을 성경/ 마25:34-40, 눅1:46-56)

네 번째 주일에는 <만남과 화해>의 촛불을 밝힙니다.

'너'와 '나'를 위해 사람으로 오신 아기 예수와의 만남과 화해를 의미하는 촛

불입니다.

(읽을 성경/ 사7:14, 눅2:1-20, 엡2:13-14)

그리고 성탄절에는 감사와 환희의 축제, <아기예수>의 촛불을 밝힙니다.

이것은 구유가 변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된 것을 축하하는 촛불입니다.

(읽을 성경/ 눅2:14, 요3:16)

• 초의 미학

어릴 때 전기나 후레쉬가 귀한 시절, 초는 참 요긴하고 귀한 생필품이었지

요. 지금이야 집안에 잡냄새를 제거하기 위해서나, 생일 축하할 때 케이크에

불을 켜는 때 말고는 초를 잘 사용하지 않지만 말입니다.

시골에 큰아버지 댁에 가면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인지라 심지불을

켰습니다. 촛불이지요. 그땐 전력이 모자라서인지 정전이 될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초를 찾았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있던 등화관제 훈련 때에는 방

에서 몰래 촛불을 켜곤 했습니다.

그런데 초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지요. 초를 켜면 공간이 거룩하게 됩

니다. 촛불의 고요함은 우리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고, 정신을 집중시켜 주며

내면에 평화가 자리합니다. 천천히 녹아 들어가는 초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지요. 명상을 하게도 하고, 이리저리 춤을 추는 불꽃에 마음도 함께

움직이게도 됩니다. 그래서 샤머니즘에서 기독교까지 모든 종교에서는 초가

중요한 성구(聖具)로 사용됩니다.

무엇보다 초를 켜면 로맨틱해 지지요. 친구들이나 동아리에서 MT를 간다든

지 해서 촛불 주위에 빙 둘러 앉으면, 왠지 진실게임 같은 거 해야 될 분위

기가 조성됩니다. 가만히 촛불을 보고 있으면 마음문이 열려 자신의 흘러간

과거도 보이고 현재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니까요.

무엇보다 초는 빛으로 산화하며 스스로 정화하고 희생하는 것으로 표현됩니

다. 안으로는 스스로를 태우며 절망을 향해 사위어 가지만 밖으로는 홀로 어

둠과 맞붙어 싸우는, 진실을 향한 열정의 상징처럼 여겨집니다.

그래서인지 근간에는 평화 집회의 도구로도 사용됩니다. 촛불집회!

• 성경에서 촛불

촛불은 성경에서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요 예배자의 헌신과 진리를 밝힌다는

의미가 있고 어둠을 몰아내는 빛으로서의 사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어디가나 초를 볼 수 있었습니다. 회당에는 토라 두루마

리가 들어있는 함 앞에 초가 타고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꺼트려서는 안되

는 영원한 빛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성전에는 항상 촛불이 켜져 있어야 했습니다. 그 전통은

광야 성막에서부터 왔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을 만들고 그

성소 안의 등대에 불을 항상 켜두라고 하셨습니다(레24:2). 그래서 제사장은

날마다 아침 저녁에 성소에 들어가 등대에 불을 밝혔습니다.

신약시대 이후에는 사람이 피우고 늘 보관해야 하는 불이 아닌, 하늘의 불

을 주셨는데 이 불은 곧 성령의 불입니다(행2:3). 우리의 심령에는 늘 성령

의 불이 타올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실존하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발걸음을 밝히고 내 가는 길에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태울 것

은 태우고, 삶에 힘을 주십니다. 그렇게 하시면서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그

분과 교제하는 이 삶이 곧 촛불 켜기입니다.

• 촛불 켜기 운동

대림절 촛불은 1842년 독일의 루터교 목사인 요한 비헤른(J. H. Wichern,

1808-1881) 목사가 성탄절을 앞두고 고아원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려고 초

를 켜기 시작한 것이 시초라고 합니다. 지금도 유럽에서는 ‘겨울철의 사순

절’로 불리는 대림절에, 집집마다 초를 밝히면서 경건함 속에 성탄을 기다리

는 모습을 쉬 볼 수 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대림절이 되면, 가정에서 촛불 켜기 운동을 벌이는 교

회들이 있습니다. 집 거실에 대림의 초를 놓고 매 주 하나씩 촛불을 켜갑니

다.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동안만은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TV와 스

마트폰은 물론 모든 전등까지 끄고 촛불을 밝힌 뒤, 차를 마시고 대화하거나

기도 묵상 등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림절 한 달을 보내면 가정이 훨씬

화목해지고 성탄절을 맞이하는 느낌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어때요 여러분, 이번 대림절에 가정마다 촛불을 켜는 것은.

그러면 우리 마음과 영혼의 촛불도 함께 켜지지 않을까요?

훨씬 더 깊고 풍성한 성탄의 은총을 맛보지 않을까요?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