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십니까?”

• 그의 과분한 인사

교회 가까이 저 우물시장 근처에 사는 몸이 좀 불편한 아이가 있습니다. 아

이라기 보다는 청년이지요. 그는 뇌성마비 중증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한 걸

음을 떼는 것이, 말 한 마디를 하는 것이 참 힘겨운 친구입니다.

가끔 교회 본당 앞에서나 무위당(无爲黨) 길을 오가다가 서로 만납니다. 불

편한 몸으로 기우뚱 해서 걷기 때문에, 저 멀리에서도 그 친구인지 금방 알

아 챕니다. 그도 저를 확인하면 유난해 집니다. 만만한 상대를 찾은 것이지

요. 멈춰 서서 말 건넬 채비를 하고 저를 기다립니다. 그래도 볼 때마다 반

겨 안부도 묻고 호주머니에 사탕이라도 건네서인지 목사를 보면 반가워 합

니다.

“목.. 산.. 임.. 안.. 녕.. 핫.. 세.. 요..”

늘 하는 첫 레파토리. 이 한 마디 인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요. (..) 사이

사이가 애간장이 타서 고개 굽이 하나는 족히 넘어 가는 듯 합니다.

몸은 제대로 가누지 못해 제멋대로 뒤틀리고, 입에는 벌써 침이 거품처럼

고입니다. 저와 눈이라도 마주 치려고 온 힘을 쓰지만 자꾸 헛돌아 가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래도 겨우 겨우 말을 이어, 정말이지 온 몸과 마음

을 다해 첫 인사를 마무리 합니다.

따지고 보면 참 과분하고 고마운 인사이지요. 아무리 가깝다 할지라도 제게

누가 그렇게 정성껏 인사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렇게 온 몸과 온 마음을

다해서요. 집에 자식들이라 해도 제 할 일에 바빠 그냥 건성으로 인사하기

일쑤 아니던가요.

“그래. 오랜만이에요. 잘 있었어?”

제가 좀 오버해서 반가워하는 것은, 아마 하루 종일 말 상대 한 명 만나기 어려

웠을 것 같아서 입니다. 안타깝지만 그런 중증장애인들을 사람 취급해 주는 세

상이 아니잖아요. 말하기 힘들까봐 제가 먼저 얼굴색이며 건강이며 주저리주

저리 의례적인 말을 붙여 보지만, 그는 별로 안중에 없습니다.

대신 말이 끝나기도 전에 꼭 하는 말이 있습니다.

“목.. 산.. 임.. 지.. 금.. 교.. 회.. 놀.. 러.. 가.. 도.. 되.. 요..?”

그리고 반드시 이어지는 말,

“커.. 피.. 한.. 잔.. 주.. 세.. 요..”

• 불통, 마음 문이 닫혔기 때문이라

처음엔 무슨 말인지 히어링(?)이 안됐는데 이젠 자주 들어서인지 웬만큼 알

아듣습니다. 언젠가 교회 제 방에 불러서 커피를 한 잔 타줬더니 그 후부터

만나면 늘 ‘커피 한잔’이 노래가 된 것입니다.

저번에는 삼광방앗간 근처에서 봤는데 또 ‘커피 달라’ 하네요. 교회 부목사

님 계시니까 가보라고 했더니 정말 와서 얻어 마셨답니다. 처음보다 배짱도

좋아졌습니다.

제 방에 오면 호기심이 많아 이런저런 걸 유심히 살펴봅니다. 책이며, 의자

며, 컴퓨터며... 웬만한 물건들의 이름을 바로 알고 있습니다. 천진난만한 아

이의 모습으로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찾기도 하고, 말은 얼마나 많은지 잘

알아듣지 못하는 질문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ㅎ△∞※@.. 어쩌고저쩌고...”

사실은 저도 그에게 물어 볼 게 많습니다.

“너의 꿈은 무엇이니?”

“제일 좋아하는 연예인은 누구니?”

“요즘 무슨 생각 하니?”

물론 아직은 정식으로 묻질 못하고 마음으로만 맴도는 질문입니다.

그가 뭐라 대답할 수 있을까요? 깊은 질병의 감옥 속에 갇혀 있는 그가 꾸

는 꿈은 무엇일까요? 그도 다른 청년들처럼 수지를 알까요? 인생의 어떤 고

민들을 하고 있을까요? 혹 그가 저보다 오히려 자유로운 건 아닐까요?

아니 어쩌면 제가 알아듣지 못하는 그의 말 가운데 이미 대답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저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저는 아이유가 제일 좋아요. 아니다 소시!”

“요즘은 저 하늘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요”

“그리고 목사님! 저도 똑바로 걷고 싶다고요. 사람들은 왜 제 말을 잘 알아

듣지 못할까 답답해요”

그는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음성으로 제게 말을 합니다. 오

히려 이 시대 불통(不通)의 원인은 마음 문이 닫혀 있는 비장애인들, 그래서

진짜 장애인인 우리들에게 있다고 또렷이 말하는 듯싶었습니다.

"내 비밀이란 이런 거야. 제대로 보려면 마음으로 봐야 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거든.."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중에서)

그의 대답에 저도 가만히 마음으로 덧붙입니다.

“그래! 너의 맑은 눈, 그 고운 마음을 어찌 하나님께서 모르시겠니? 사람과

는 통하지 않지만 성탄으로 오시는 주님은 네 말을 잘 들어 주실 거야”

• 또 하나의 인사, ‘안녕들 하십니까?’

'안녕들 하십니까?' 며칠 전 서울에 어느 대학 학생으로부터 시작된 이 지극

히 평범한 인사말이 공감을 얻으면서 전국을 휩쓸고 있지요. 의회에도, 대학

에도, SNS에도, 거리에도, 심지어 고등학교 담벼락에도 ‘안녕들 하십니까?’

가 릴레이 되고 있습니다.

그 글은 밀양 송전탑, 철도 민영화 사건, 그리고 국정원 대선 개입과 부정선

거 의혹 등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지만, 그 어조는 평범한 인사말로 시작해

서 이끌어 갑니다. “안녕들 하십니까?”

놀랍지요. 누구나 매일 하는 ‘안녕하십니까?’란 말 한마디가 이렇게 사람들

의 가슴을 울리다니요. 그리고 마치 온 세상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 질문에

두루 응답하고 있습니다. 우린 안녕하지 못하다고.

지난 정부에서도 그 미숙함이 드러난 바, 이번 정부에서도 대립과 소통의

부재에 국민들은 지쳐 있어 보입니다. 저들은 계속해서 국민은 안녕하다고

말하는데, 정작 국민들은 안녕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

다.

어제는 우리 민족의 전통민요인 ‘아리랑’을 비롯해, ‘그날이 오면’ ‘우리의

소원은 통일’ 등의 노래가 금지곡이 되었다고 하던데요, 그게 정말인지, 이

시대가 70년대로 돌아간 것인지 귀가 의심스럽습니다.

오죽하면 보수적인 우리 교단에서도 총회장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기에 이

르렀습니다.

“...먼저 우리 총회는 지난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과 국방부사이버사령부의

개입으로 인한 국론분열, 정치권의 비정상적 국회운영, 민생문제의 소외상

황에 대해 우려를 표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소중히 지켜온 민주주의 원칙

과 국민의 주권을 무시한 행위입니다. 또한 정부가 성직자의 말씀선포사역

에 대해 감시, 고소 및 수사를 하는 행위는 자유로운 종교활동과 언론의 자

유와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이에 총회는 이 일의 중심에 있는 책임

있는 당국자들의 사과를 요청하며, 재발방지를 위한 사후 대책을 제시할

것을 요구합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측 총회장 목민교회 김동엽 목사, 전국 목회자에게

보내는 목회서신 중에서)

제 기억에 우리 교단의 수장으로부터 이런 목회서신 형식의 시국선언문을

받은 건, 목사가 된 이후 처음인 것 같습니다. 우리 하나님도 안녕하지 못하

신 것은 아닐까요? 그만큼 시국이 어지러운 것이리라.

그러나 성탄으로 오시는 예수께서 꿈꾸신 하나님나라를 위해, 생명과 정의

와 평화의 세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 할진

대, 총회장의 서신은 적절한 독려라 생각됩니다.

제대로 눈을 뜨고 있다면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가 있

을 텐데요. 세심하게 마음의 귀를 열고 듣는다면 어떤 소리들이 아우성 치고

있는지 들릴 텐데요. 눈 감고 귀 막고 마음조차 닫혀 있어 보이지 않고 들리

지 않는가 봅니다.

• 어눌한 그의 인사가 그립다

문득 이 글을 쓰다 말고 밖에 나가 혹 그가 오가지 않을까 한참을 서 있다

들어왔습니다. 오늘은 벌써 집에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네요.

왜 갑자기 그가 보고 싶었을까? 아니 분명히 하자면 어눌한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가 이 불통의 세상을 향해 던지는 그 인사가 화두

처럼 제게 묻습니다.

“안.. 녕.. 들.. 하.. 세.. 요?”

“이 안녕치 못한 시대에 목사님은 안녕하십니까?”

“이 어두운 시대에 원주영락교회는 안녕하신가요?”

저의 대답은 부끄럽게도 이것뿐입니다.

“그래 미안하다. 너무 안녕해서 미안할 뿐이다”

/사랑으로 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