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에 있는 큰 형에게>

1.

그럼 오늘로 벌써 아흐레째네요.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누워만 계신 게.

아마 우리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처음일 거 같아요.

큰 엉아가 그렇게 환자복을 입고 병실에 누운 건.

그리고 그렇게 병상에 누워 있는 형을 면회하게 된 건.

지난 번 와사증이 왔을 때도 입원까지는 안했는데.

바짝 마른 얼굴, 쾡한 두 눈이 병상의 통고(痛苦)를 말해 줍니다.

늙으신 아버지 어머니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아버지 생신이라고 큰댁 식구들까지 다 모였는데도, 텅 빈 느낌이신가 봐요.

어르신들 모두 밥도 남기시고, 매일 병원에 들르신다면서 또 가보자 하시니.

“아부지 뭘 가보셔요. 어제도 갔다 오셨다문서. 환자 힘들어요.”

억지로 주저앉히긴 했지만 영 편치 않으신 눈치입니다.

생신이라고 강원도에서 온 제게도, 밥 먹었으니 서둘러 가라고 하시네요.

늘 멀리서 왔다가 금방 간다고 서운해 하셨는데...

생신 식사때 대표기도는 장로와 목사가 서로 떠밀다가 결국 목사가 졌어요.

작은 엉아가 초자(?) 장로라고, 제게 무거운 짐을 억지로 떠맡긴 것이지요.

부모님 생신때 막내인 제가 기도한 것도 이번이 처음 아닌가 싶어요.

늘 큰 엉아가 예배를 인도해서 이런 사태(?)는 없었는데 말이에요.

그렇게 형이 울타리가 되어 왔나봐요. 제게도 부모님들께도.

2.

가벼운 장염이라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더니 그게 아니네요.

간이며 신장이며, 수치가 갑자기 그리 많이 올라가기도 했었으니.

수치가 떨어지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어요, 위험할 수도 있었다니.

하루에도 수도 없이 속을 비워내고 물처럼 내린다니 얼마나 힘들어요.

먹은 게 없어서 얼굴이 수척하니 반에 반쪽이 되셨어요.

옆에서 간호하시는 형수님 마음은 또 어떨는지요.

평소 같으면 밝게 수다라도 떨었을 사라도, 왠지 시무룩-해서 있습니다.

큰 엉아! 이번에 퇴원하시면 이젠 몸 좀 챙겨야 겠어요.

그렇게 늘 괜찮다고 청년처럼 나다니지(?) 마시고. plz..

막냇동생인 제가 벌써 오십이 넘었다고요, 내일 모레가 진짜 환갑인 양반이.

(무슨 슈퍼맨이라고... “형수님! 제가 말 잘했지요?”)

이번 일로 이 동생 목사가 기도 좀 더 빡세게 할게요.

원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예은이가 이런 말을 하대요.

“큰큰아빠? 얼굴 좋아 보이시던데. 나도 아팠으면 좋겠다 살 빠지게..”

요즘 한참 다이어트가 소원인지라 어린 눈에 그렇게 보였나 봐요.

‘요놈이~’ 하고 혼냈지만, 딴은 형에게서 그런 모습도 있긴 있었네요.

뭔가 홀가분히 다 비운 듯한. 세상 욕심과 욕망은 다 내려놓은.

핏기 하나 없는 얼굴이며 뱃가죽이 등에 붙게 홀쭉해진 몸이며.

내 몸을 쫄여 위장을 비우고 욕심도 비우고 생각도 비운 듯.

그래서 시내산 40주야 금식을 끝내고 내려온 모세 얼굴이 빛났던 걸까요.

3.

금식해서 먹지 않고 장을 비우면 오히려 영이 맑아진다는 말이 맞나봐요.

엊그제 형이 병상에서 올린 페북의 글이 배나온 제 마음을 일깨워 줍니다.

“...병상에 누워서 드리는 찬송과 말씀 그리고 묵상은 얼마나 많은 은혜가

되고,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아니겠지

만, 이 순간은 그것이 그렇게 큰 아픔이요 고통임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앞날에 대한 소망이 있기에 순간순간을 이겨나가고 있음을 고백

한다. 오늘 아침에 부른 찬송과, 욥기를 읽어 가다가 은혜가 된 욥의 아

픔을 묵상한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갑니다 /고통가운데 계신 주님

변함없는 주님의 크신 사랑 /영원히 주님만을 섬기리

“나는 음식 앞에서도 탄식이 나며 내가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소리

같구나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욥3:24-26)

4.

주님!

어차피 겪어야 할 병상이라면, 형에게 비움의 은총을 더욱 경험케 하소서.

이참에 음식만 비우지 말고, 세상 거친 것이 있다면 다 비워 버리게 하소서.

채우는 데만 열심인 세상, 비움에서 오는 참 영성을 지니게 하소서.

공생애 성역 시작하실 때 광야에서 금식하시며 다 비우신 주님처럼,

사방에서 몰려든 무리들 뒤로 하고 한적한 곳에서 기도에 전념하셨듯,

비우는 신앙, 물러서는 지혜로 충만한 병상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주님!

우리 큰 엉아, 순박하고 우직한 우리 엉아.

지극히 가난한 몸과 영혼 되어,

저 하늘 양식으로만 배부름을 얻게 하소서.

2014년 1월 24일

/원주에서 동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