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밤 고향집에서

-20130919 목자의 일기

• 보름달 아래 모여 앉아

추석날 늦은 밤 고향집 보름달 아래, 다들 돌아간 자리에 이부자리. 오랜만에

아부지 엄니와 원주 막내아들, 그 막내아들의 막내아들이 마주 앉았다. 한 번

더 들으면 백 번째일 옛날 이야기들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얘, 니 아빠는 너만 할 때 노래 부르라 하면, 딱 차려 자세에 두 발 모으고

‘보리밭’ 노래를 그렇게 불렀단다”

“킥킥 그랬어요?”

추운 시절 이야기지만 따스한 추억이 되어 웃음꽃은 피고지고.

“영민아, 할아버지에게 태권도 시범 한 번 보여드릴까?”

“아 창피~~ 알겠어요. 야,얍,얍!!”

마침 TV에는 고향 냄새 흠뻑 배인 어느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온다.

<고향극장> 내 사랑 내 곁에? 제목은 뭐 대충 이런 것이었는데.

지리산 화개면 깊은 골에 알콩달콩 구순의 노부부.

열아홉 스물에 결혼을 하셔서 80년을 넘게 살아 오셨다.

당신 몸 가누기도 힘드신 할아버지가 부엌에서 밥상을 차리고

할아버지 보다 더 힘드신 할머니는 가만-히 마루에서 바라보고 있다.

장날이면 화개장터에 나가 약주 한 잔, 꽹과리에 춤사위도 좋을세라.

그 할아버지를 대청마루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리는 할머니.

돌아오시는 할아버지 손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선물, 뻥튀기 한 봉다리다.

은비녀 색경까지 선물 받은 할머니, 그 깊고 깊게 패인 주름으로 말하신다.

“영감, 나의 소원도 한날한시에 가고 싶소”.

그러자 할아버지가 맞장구를 치신다.

“마누라. 함께 살아 줘서 고마워”

그렇게 추석날 밤에 TV는 사랑을 싣고 고향집에 흘렀다.

• 아부지가 우신다

‘참 행복한 커플(?)일세!’ 하며 별생각없이 돌아 눕는데, 뒤가 좀 이상하다.

아버지께서 눈을 씀벅씀벅하신다.

“응? 아부지 우시능겨?”

누우시면 금방 오도바이처럼 코를 고시는 엄니도 언제 깨셨는고.

아아~, 그래 그렇게 두 분도 이제 늙으신 것이다.

지리산에 그 할아버지 할머니가 멀리 있지 않으셨다.

열아홉 스물에 한 몸 되어 60년을 살아오신 우리 아부지 엄니.

서로의 반쪽으로 살아 온 세월만큼이나 깊고 깊은 정(情).

메마른 가슴에 단비를 뿌리고 꽃을 피우는 길은 저 TV에만 있지 않았다.

나도 오십 줄에 들어서인지, 팔순이 다 되신 부모님에게 더욱 고개가 숙여진

다. 잘 나시지도, 많이 배우시지도, 성공하지도 못한 인생이지만 두 분이 도란

도란 살아오신 가을소국같은 향내가 두 막내아들 가슴속에 그득하게 내리운

다. “아버지 엄니, 저희도 두 분처럼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더 늦기 전에 부모님의 손을 잡아 드리세요>라는 책이 있다. 평범하지만 실

행하기 쉽지 않은 서른 두 꼭지를 콕콕 집어 말해 준다. 제목만 보더라도 유

익하리라 생각되어 그 서른 두 제목을 적어 본다. 이 가운데 이번 명절 때 행

하신 것은 몇 개나 되는지? 아까운 추석날 밤이 그렇게 깊어갔다.

1)어머니, 아버지의 손을 꼬옥 잡아보세요

2)아버지의 궂은 발을 씻겨 드리세요

3)어머니가 아끼는 물건을 소중히 간직하세요

4)아버지의 옛 이야기들을 들어주세요

5)삶의 문제 앞에서 갈 길을 잃었을 때, 부모님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세요

6)자식에게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7)아버지와 다정하게 둘이서 사진을 찍으세요

8)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뵙고 한 이불에서 자고 오세요

9)아버지께 과거의 잘못 하나를 고백해보세요

10)자녀 데리고 조부모님 산소에 가보세요

11)아버지가 돌아오시는 길에 마중을 나가보세요

12)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가 어릴 적처럼 노래를 불러 드리세요

13)아버지가 평생 해오신 일을 자랑스러워 하세요

14)할아버지, 할머니께 편지를 쓰세요

15)어머니의 흰머리를 뽑아 드리고 염색을 해 드리세요

16)아버지의 술친구가 되어 드리세요

17)아버지와 같이 이발소에 가세요

18)어머니, 아버지와 여행을 떠나보세요

19)가족사진을 찍으세요

20)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물건을 선물해 드리세요

21)어머니, 아버지를 업고 걸어보세요

22)어머니와 둘만의 시간을 가져보세요

23)어머니의 공간인 부엌을 들여다보세요

24)어머니, 아버지와 노래방에 가보세요

25)아버지의 고단한 몸을 주물러 드리세요

26)부모님과 함께 목욕탕에 가세요

27)부모님의 건강을 자주 체크하세요

28)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음식을 만들어 드리세요

29)어머니 몰래 아버지께 용돈을 드리세요

30)할머니 손을 잡고 장에 나가보세요

31)지금 바로, 부모님께 문자메시지를 보내세요

32)부모님과 옛날 앨범을 보며, 추억이 담긴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더 늦기 전에 부모님의 손을 잡아 드리세요> 중에서, 이상훈 저, -살림-

/사랑으로 샘물

(2013,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