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3년 한스 루더(Hans Luder)와 그의 아내 마르가레테(Margarethe)가 독일 작센 지방의 광산촌 아이스레벤에 찾아왔다. 부모는 아이들 가운데 가장 명석한 마르틴에게 큰 기대를 걸고 마그데부르크와 아이제나흐의 학교로 보냈다. 그러나 후일 루터는 이 시기를 지옥 같은 나날로 묘사했다. 언젠가는 배우지도 않은 문법 사항을 잘 모른다고 하여 하루에 열다섯 번이나 몽둥이로 맞은 날도 있었다. 당시에도 부모의 기대는 지금과 엇비슷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법률가가 되기를 바라고 에르푸르트 대학에 진학시켰다. 그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는 첫해 시험에서 57명 중 30등이었으나, 점차 성적이 올라서 1505년 2월 석사 과정을 졸업할 때는 전체 300명 중 2등을 차지했다(학업 성적이 역사에 길이 남는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자).

이제 남은 일은 아버지의 바람대로 법학을 전공하여 변호사가 되는 것, 그러나 루터는 맘 편하게 출셋길을 내딛는 인간이 못 되었다. 그는 지독한 불안에 시달렸다. 늘 그의 마음을 옭아매고 있는 근원적 문제는 죽은 후 과연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나 같은 죄인은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악마들에게 고통을 받는 건 아닐까? 이런 강박증이 그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저를 살려주신다면 수사가 되겠습니다!”

학생 시절에 겪은 한 사건이 루터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1505년 7월 2일, 루터는 고향 집에 갔다가 말을 타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들판에서 폭풍우를 만났다. 그런데 돌연 자신의 바로 옆에 벼락이 떨어졌다. 공포에 사로잡혀 땅바닥에 나동그라지며 그는 이렇게 외쳤다.

“성 안나여, 저를 살려주신다면 수사가 되겠습니다!”

학교에 도착해서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자, 다들 그런 상황에서 한 맹세는 무시해도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서약을 지키겠다고 결심했다. 루터는 곧 법학 과정 등록을 취소하고 책도 다 팔아버린 다음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에 입회 신청을 했다.

1507년 4월 3일, 루터는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리고 5월 2일 드디어 첫 미사 집전을 했다. 첫 미사 집전 축하연 때 루터는 아버지에게 이제 자신을 용서하겠느냐고 물었다. 웬만하면 “이렇게 된 마당에 너의 길을 잘 가거라.” 하고 말할 법도 한데, 루터의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다. 늙은 애비를 버려두고 떠난 놈이라며 힐난하자, 루터는 당황하여 하느님이 천둥소리로 자신을 직접 부른 것이라고 응답했다. ‘그게 악마가 아니기를!’ 하는 아버지의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이후로도 루터는 과연 나를 이끈 게 하느님인지 악마인지 고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세상을 바꾸어놓은 ‘탑의 체험’

당시 신학의 중요한 논의 주제로서 루터도 큰 관심을 둔 문제는 소위 의인(義認, justification)의 교리였다. 이는 하느님이 인간을 죄의 상태에서 은총의 상태로 옮기는 것을 뜻한다. 인간이 구원받는 데에 하느님의 은총이 중요하며 자신의 노력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데에는 누구나 동의한다. 문제는 하느님의 은총이 얼마만큼 필요하며, 인간은 그 과정에서 어떤 부분을 담당하는가 하는 점이다. 구원의 과정에서 인간은 전적으로 무력한가, 아니면 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이런 중요한 문제에서 교리가 생각만큼 명료하게 통일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최근에는 루터의 강의노트 일부가 발견되어 루터 사상의 발전을 어느 정도 추적할 수 있게 되었다. 루터의 초기 생각은 ‘당신 안에 있는 것을 행하라(facere quod in se est)’는 말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인간이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하느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믿음이다. 인간의 노력에 하느님이 응답하시고, 여기에 더해 선행을 실천함으로써 완전한 회개와 신의 사랑에 도달한다는 견해다. 아마 당시 교회에서 신자들에게 가르친 내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그렇게 가르치면서도 스스로는 확신을 하지 못했다. 과연 이것이 옳은 가르침인가? 나는 진정으로 뉘우치고 구원을 받을 것인가? 혹시 마음속 깊고 어두운 곳에 죄를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 루터는 ‘발작’ 같은 영적 시련(Anfechtungen)을 겪고 있었다.

마음속 전쟁터에서 사투를 벌인 끝에 그가 답을 찾은 것이 흔히 거론하는 ‘탑의 체험’이다. 탑이란 비텐베르크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의 탑을 말한다. 1514-15년 사이 언젠가 그는 이곳에서 <로마서 1:17>에 나오는 내용(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을 깊이 생각하다가 ‘하느님의 의(iustitia dei)’라는 단어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때까지 ‘의(justification)’란 하느님의 정의라고 생각해 왔다. 우리는 사후에 하느님의 법정에서 판정을 받을 텐데, 하느님이 보실 때 인간이 어찌 완전하겠는가, 분명 사악함 덩어리인 불완전한 죄인에게 하느님의 가공할 처벌이 따를 것이다. 이런 생각이 루터의 두려움의 근원이었다. 그런데 앞서 말한 성경 구절을 홀연 다르게 해석하게 된 것이다.

하느님의 의는 벌이 아니라 죄인들에게 주는 선물 같은 것이다. 그 선물을 통해 우리는 즉시 의로움을 갖추게 되리라. 따지고 보면 우리말로 ‘용서(容恕)’라고 번역하는 ‘pardon’은 원래 뜻이 ‘전부(par)’ ‘준다(don)’는 것이다. 절대 결핍의 존재인 인간에게 하느님이 생명과 은총을 채워주는 것이 ‘pardon’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오직 믿음으로써(sola fide) 가능하다.

종교개혁의 발단

브란덴부르크의 알브레히트

브란덴부르크의 알브레히트(Albrecht von Brandenburg, 1490-1545)의 야심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의 아들인 그는 교계에 입문해 1513년 23세에 마그데부르크 대주교가 되었고 곧 할버슈타트 교구의 행정직도 맡더니 이듬해에는 마인츠 대주교로 선출되었다. 이처럼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교회 직위를 맡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고 당연히 불법이었지만, 교황 레오 10세는 납부금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이를 허락했다. 당시 교황은 베드로 성당 건축을 위해 큰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알브레히트는 당대 최고의 상업·금융 가문인 푸거(Fugger) 가에서 거액을 빌려 이 문제를 해결했다. 푸거 가가 교황청에 2만 9,000굴덴을 선불하고, 알브레히트는 이를 갚기 위해 교황청으로부터 면죄부 판매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판매를 잘하기 위해 도미니칸 수사인 요한 테첼(Johann Tetzel)을 면죄부 판매 대리인으로 임명했다.

면죄부를 이해하려면 중세 스콜라 철학자·신학자들이 제시한 ‘공덕의 보고(Treasure of Merit)’ 이론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와 성인들은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 충분한 정도 이상으로 공덕을 쌓았다. 여분의 공덕은 교황의 중재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 일종의 마일리지 개념이라고나 할까. 신자들은 이 공덕을 받아 자신의 죄에 따르는 형벌을 감경받을 수 있지만, 그건 공짜로 되는 게 아니라 교회에서 정한 방식에 따라 회개하고 선행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예컨대 몸이 약한 사람에게 산티아고로 순례를 갔다 오라고 시킬 수는 없다. 이처럼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면죄부를 구입하는 게 가능하다.

그러니까 원래 면죄부라는 것은 교리상 틀린 게 아니고 생각만큼 괴이한 제도도 아니다. 또 죄를 면해 주는 게 아니라 벌을 감해주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죄를 면제해 주는 부적’이라는 의미의 면죄부라는 용어는 사실 오역이다(그래서 최근 ‘면벌부’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아직 용어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으므로 일단 면죄부라는 기존 용어를 사용하기로 하자).

신중한 태도를 보인 현명공 프리드리히는 테첼이 자기 영토 안에까지 들어와서 면죄부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그렇지만 테첼은 작센 변경 가까운 곳까지 와서 설교하며 면죄부를 판매했고, 실제로 이 지역 사람들이 면죄부를 구매해 가지고 왔다. 과연 이런 일들이 합당한 건지 의심이 든 루터는 알브레히트의 <면죄부 설교자를 위한 교본(Instructio Summaria)>을 구해서 읽어보았다. 거기에는 연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영혼들의 모든 벌을 면제해 줄 것처럼 약속하고 있었다. 암만해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