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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의 글

제목 일상, 부활을 살다
이름 최현장
작성일자 2021-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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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부활을 살다>

    
부활의 은총

오늘 긴 사순절을 다 보내고 부활주일을 맞았습니다. 어제부터 봄비가 내리고

있는데요, 치악산 저 깊은 골짜기마다 겨우내 죽었던 초목들이 살아나 생명의

춤을 추고 있을 듯싶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작년에 이어 다시, 성찬도 칸타타

도 점심만찬도 없는 차분한부활절이지만, 담임목사로서 부활의 소식, 부활

의 축복은 넘치게 전하고 싶습니다.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과 가정에, 영락교회와 이 땅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부활은 우리 신앙의 핵심이지요.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

도의 말씀과 사건의 마지막 절정이지요. 십자가에서 끝날 뻔한 종교였지만,

활을 통해 되살아났습니다. 사도들은 다름아닌 부활을 증거하는 자들이었고(

1:22), 여기로부터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교회의 상징은 십자가이고 교

회 종탑에도 본당에도 십자가가 세워져 있지만, 저 십자가의 도()를 복음으

로 만든 사건이 부활이지요.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

진 부활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백해요.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

”(고전15:14)

    
죽음을 넘어서

왜 그리스도의 부활이 신앙의 중심이요 복음의 핵심일까요? 한 가지입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인생의 가장 큰 적이지요. 사랑하

는 이들을 갈라놓고,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합니다. 죽음의 공포, 죽음의 허

망함.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어디로 가는가? 내세가 있는가?’. 실로 죽음은

인간이 넘을 수 없는 벽이요, 인생을 무너뜨리는 원수입니다. 철학자 하이데거

의 말처럼, 인간은 그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Sein zum Tode)이기에 비참

합니다.

    
영락교회 근 20여년 목회하면서, 수많은 이들을 떠나보냈습니다. 어떤 장례식

이라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노년의 죽음이라고 덜한 것이 아니지요. 젊은 죽음

은 더욱 더 슬프게 합니다. 죽음은 모두에게 초행길이어서 아무도 그 앞을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백 세 시대가 되었다 해도, 죽음으로 끝난다면 참으로 허

무한 생입니다. 인류의 궁극적인 문제는 장수도 경제도 아닙니다. 바로 죽음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다른 어떤 주제보다 죽음에 대해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씀합니

. “죽음이 왜 왔고, 인생은 어디로 가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죄로 인해

죽음이 왔습니다. 육체적인 죽음, 무엇보다 영적인 죽음이 와서 생명의 근원이

신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죽음을 이기는 길이 있으니, 예수

그리스도이시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11:25-26).

이것을 확신하고 다시 마음에 새기는 날, 부활절입니다.

    
두 무덤

성지순례가 10년도 넘어 아련하지만, 아직도 또렷한 포인트 두 곳이 있습니

. 이집트에 피라미드와 예루살렘에 성묘교회입니다. 두 곳 모두 무덤이지요.

피라미드는 아주 화려합니다. 강력한 파라오 쿠프 왕 피라미드는 20년 동안

10만 명 노예들을 동원해서 지었습니다. 밑변이 230m 높이가 약 147m 2.5

톤의 커다란 돌을 230만개나 쌓아 올렸습니다. 전체 무게가 684만 톤에 이르

는 현존하는 세계 최대 건축물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뭐가 있어요? 현세와

똑같은 내세공간에 왕의 시신이 있습니다. “사후에도 나라를 다스리리라”.

음을 이기고 영원히 살고 싶어 하는 욕망이 담겨 있지요. 그러나 지금 뭐가

남아 있을까요? 시신은 도굴 당하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반면에 예수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는 거기에 비해 작고

초라합니다. 예루살렘 서쪽 언덕에 십자가의 길, Via Dolorosa 14개 지점이

끝나는 곳, 그러니까 십자가를 지셨던 골고다 언덕에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 안에 아리마대 요셉의 묘지가 있고, 거기에 주님의 시신이 모셔졌을 것이

라 추측합니다. 그런데 그 무덤은 빈 무덤이에요. 원래부터 시신이 없었어요.

(20)막달라 마리아가 제일 먼저 주님 무덤을 찾는데, 빈 무덤이었지요.

님은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20:13). 오늘 우리

에게 하시는 말씀이지요.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데, 너와 함께 하는데, 죽어

도 다시 사는 영원한 생명을 줬는데, 죽고 끝장인 것처럼 왜 절망하고 있느

?”

    
만약 피라미드에 미이라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하면 세상이 난리가 날 것입니

. 도굴 당한 시신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주님의 무덤에서 시신이 발견

되었다면? 교회는 문을 닫아야 합니다. 주님은 부활하사 그 몸이 무덤에 계시

지 않기 때문입니다. 빈 무덤의 종교, 부활의 종교, 죽음을 이긴 생명의 주님,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죽음을 이길 수 있을

? 어떻게 죽음을 버리고 생명을 채울 수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

을 믿을 때.

    
일상의 부활

그런데 왜일까? (20)에서 부활의 주님을 두 번씩이나 본 제자들인데, (21

)디베랴 바닷가에서 물고기나 잡고 있다니? 부활의 주님을 만났으니 깃발을

들고 함성을 지르며 나갔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물고기나 잡으러 가노라..

우리도 함께 가겠다?”(21:3)

    
부활하신 주님도 엉뚱하시지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거기에

찾아 오십니다. 그 위대한 손으로 아침상을 준비하십니다. 숯불을 피우고 상에

는 떡을 놓으시고 잡은 고기를 달라 하시며 생선구이를 해서 제자들을 먹이십

니다. 일백쉰세마리까지, 복음서에 다른 어떤 장면보다 현실적이고 인간적이며

구체적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물고기를 굽고 아침 밥상 차리시는 모습을 상

상할 수 있습니까? (21)은 후대 첨가라 보기도 하지만, 이 또한 이유가

있으리라.

    
부활은 죽은 다음에만 유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세에나 있을 부활, 살아

있을 때는 소용없는 부활이 아닙니다. 부활은 현세, 오늘 우리 삶에 구체적으

로 살아 있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약속하신 만남의 장소도 천국이 아

니었습니다.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28:10). 갈릴리는 제자들

삶의 현장이지요. 죽어서 가는 천국, 죽음 이후의 부활만 중요했다면, 주께서

갈릴리에 오시지 않았겠지요. 그물을 던지는 생업의 자리, 먹고 살아야 하는

밥상, 그 곳이 또한 부활의 기운이 임해야 하는 성소(聖召)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지금, 갈릴리에 찾아 오사 제자들을 만나시고, ‘배 오른편에 그

물을 던지라’, 153마리를 잡게 하십니다. 숯불을 피우고 생선을 가져 오라,

을 준비하사 함께 밥을 드십니다. 부활절 아침 식사, 디베랴 바닷가 만찬이라.

진정한 부활신앙은 삶에서 생명의 역사를 사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먹고 사는

삶에서, 그물 던지는 일터에서, 매일 대하는 가정의 식탁에서. 거기에서 부활

하신 주님을 만나고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주님과 함께 부활의 삶

을 살지 아니하면 그날에 주님과 함께 부활하지 못할 것이라.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의 저자 유진 피터슨은 <일상, 부활을 살다>에서 식사

를 강조합니다. 복음서에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신 곳 가운데 두 곳이 중요

한데, (24)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그리고 (21)입니다. 두 곳 모두 식

사를 강조합니다. 엠마오 가던 제자들이 식사하던 중에 부활하신 주님이심을

발견합니다. 디베랴 바닷가에서도 주님은 식탁으로 제자들을 초대합니다. 거기

서 다시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마음문이 열려서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양을 치라 먹이라”, 제자들 부활신앙이 분명해 진 것입니다. 음식을 먹는 것보

다 더 일상적인 일이 어디 있어요? 그 구체적인 일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

야 한다는 뜻입니다.

부활은 일상생활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 교리적 신념을 넘어서는 실제적 현

실이다... 부활을 죽음이후 추상적인 것으로 축소하지 말고 Living the

Resurrection, 일상생활에서 부활의 삶을 살라

<일상, 부활을 살다> 중에서.

    
가장 맛있는 반찬

어제 토요일 오전, 부활주일 준비를 위해 성도들이 오셨습니다. 본당을 청소하

고 부활절 선물을 포장합니다. 강단 꽃꽂이에, 교회 주변 화단까지 말끔하게

정돈을 했습니다. 정말이지 교회가 오랜만에 성도들로 북적였지요. 일을 마치

고 점심을 시켜 먹는데 너무 맛있습니다. 아주 맛있는 반찬이 있었어요. 얼굴

반찬, 반찬 중에 제일 맛있는 반찬입니다. 마스크를 하고 있고 서로 멀리 떨어

져서 먹었지만, ‘이게 교회로구나싶었습니다. 주님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

함께 어우러진 곳, 섬김의 손을 보태 선물을 만드는 곳, 함께 일하며 밥을 먹

는 곳, 교회입니다. 그 안에 기쁨이 있습니다. 사랑이 있습니다. 웃음과 감사

가 있습니다. 용서가 있고 관계가 회복됩니다. 영적인 교제, 친밀함이 가득합

니다. 부활절 헌금과 사랑의 저금통 가운데 일부는 가난한 이웃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 계시도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생명을 얻었으니, 그 생명과 사랑을 나누

는 것입니다. 어떤 학자는 이것을, ‘사랑의 순환이라 표현합니다. 하나님과 사

랑의 숨을 주고받은 성도가, 그 숨을 내 안에만 담고 있지 않고 그에게 전해

줍니다. 우리 각자는 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폐, 하나님의 숨.

    
목사의 기도

어제 밤에 자는데 잠이 잘 안와요. 가만 생각해 보니 부활주일 설교 영향인

것 같습니다. 죽음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다 보니, 죽음이 실존론적으로 다가온

것이지요. 이렇게 기도하고 잤습니다. 부활절 전날 밤에 드린 목사의 기도문입

니다.

주님 내일이 부활주일인데, 제가 다시 일어날 수 있을지요. 내 인생이 주의

손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 밤 주님께 내 몸을 의탁하나이다. 이 밤 깊은 잠

을 통해 참된 안식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깊이 자다가 주님이 불러 가셔도 감

사히 받겠습니다. 만약 다시 깨어나 부활의 아침을 맞게 하신다면, 특별히 감

사하겠습니다. 어제와는 다른 새 날을 주심에, 부활주일 강단에 설 수 있게 하

심에. 그리고 어제의 내가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된 삶을 살겠습니다.

죽었다 다시 산 사람처럼, 처음 이 봄을 맞는 사람처럼 비도 나무도 풀도 다

르게 보겠습니다. 오늘 만나는 성도들을 처음 만날 때처럼, 반가이 새로운 마

음으로 만나겠습니다. 버려야 할 것 일곱 가지, 탐심 자아 낙심 쾌락 돌같은마

음 의심 그리고 죽음을 버리고, 감사 주님 소망 기쁨 기경한마음 확신 그리고

생명의 삶을 살겠습니다. 훗날 나의 죽음 후에 올 부활을 믿으며, 오늘 부활하

신 주님과 함께 부활의 삶을 살겠습니다

    
/사랑으로 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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