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디’, 그 새로운 시작

• 대나무를 좋아하십니까?

대나무는 보통 다른 나무보다 훨씬 빨리 자란다고 하지요. 큰 것은 보통 20미

터가 넘고 밑둥치가 20여 센티나 되는 것도 있습니다. 가늘고 길면서 위로 쭉

쭉 자라기 때문에 크는 속도가 놀랍게도 빠른 것입니다. 또한 대나무는 속이

텅 비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바람에 강해 쉽게 부러지지 않으며 푸르고 곧

게 자랍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대나무를 참 좋아했습니다. 매난국죽(梅蘭菊竹), 사군자

에 대나무가 당당히 들어 있습니다. 곧은 것은 지조와 절개를 상징해서, ‘대쪽

같은 사람’이란 대나무를 쪼갠 듯이 똑바른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고산 윤선도는 <오우가>에서 대나무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모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다

저렇게 사시에 곧으니 그를 좋아하노라”

속이 텅 빈 것이 마치 모든 욕심을 비우고 있는 듯 하고, 바람에 강해서 쉽게

부러지지 않기 때문에 대나무를 좋아한다는 싯구입니다.

• 마디의 역할

그런데 대나무가 바람에 꺽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마

디’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종의 성장맥인데요, 대나무에는 다른 나무에

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마디가 있습니다. 나무 중간 중간 일정한 간격으로

매듭을 지으며 자라서, 그 마디가 나무를 강하면서도 유연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각 마디마디가 나누어지니 충격을 흡수합니다. 폭풍우 속에서

다른 나무들은 부러지고 꺾여도 대나무는 쉽게 꺾이지 않습니다. 이리저리 흔

들리면서도 결국엔 살아남습니다. 또한 그 마디는 대나무를 곧게 자라도록 잡

아 줍니다. 휘청거리는 대나무가 하늘로 곧게 뻗을 수 있는 것은, 각 마디가

균형을 잡아주고 바로잡아 주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대나무 마디는 나무의 나이테와 같아서 얼마만큼 성장하고 성숙했는

지 보여 줍니다. 마디가 몇 개인지 보면 그 대나무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

고, 가장 아랫부분에 마디들은 얼마나 많은 세월을 잘 견뎌 왔는지 보여 줍니

다. 오래된 대나무 일수록 아랫부분에 있는 마디가 굵고 촘촘합니다. 그만큼

오랜 세월을 견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굵은 마디가 세월의 아픔을 겪어

온 흔적이요, 대나무의 성숙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대나무의 마디가 중요합니다. 그 마디는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

다. 그 마디 하나가 새로 생기기 위해, 줄기는 힘차게 하늘로 솟아올라야 하

고, 뿌리는 그만큼 땅으로 뻗쳐야 합니다. 험난한 풍상(風霜)을 겪으면서 단단

한 매듭을 만들어 내는 것은 대나무에게 너무나 힘들고 괴로운 일입니다. 그

러나 그 마디 때문에 꼿꼿한 대나무가 될 수 있습니다.

• 마디가 있는 인생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듭과 마디가 중요합니다. 학생들에게는

6-3-3-4 학제가 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12학년제를 이어서 해도

되지만 굳이 초중고대 학제로 나누는 것은, 중간 중간에 마디를 두어 마무리

와 새 출발을 독려하기 위함입니다. 한 과정을 마칠 때마다, 졸업과 입학을 통

해 한 마디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마디를 힘차게 시작하는 것이지요.

사람의 손가락을 보세요. 만약 손가락이 마디 없이 하나의 통으로 되어 있다

면, 인간은 손을 지금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고, 인류의 문명

은 쉬 발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자유자재로 움직임에 따

라 더 큰 문명의 발전을 가능케 했습니다.

대자연도 사계(四季)와 같은 계절의 마디를 거치면서 더욱 새로워집니다. 사람

도 새로운 계절을 맞을 때마다 그 변화에 따라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크게

는 한 해를 새로 맞을 때마다 1년의 매듭을 잘 짓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매

달 1일에 월삭새벽예배를 드리는 것도 이러한 마디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지요. 나아가 한 주 한 주, 작게는 하루하루 맞이하고 보낼 때마다 그 매듭을

잘 맺고 다음 순간을 맞는다면, 훨씬 의미 있고 유익한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세상사도, 한 교회가 세워져 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월의

한 굽이를 넘을 때마다, 필연적으로 우리는 고난과 시련을 겪게 됩니다. 그러

나 결코 고난이 있다고 해서, 기대하고 소망하던 것들이 다 사라졌음을 의미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은 이제 한 굽이가 넘어가고 새로운 단계가 가까

이 왔음을 알려주는 신호라고 보면 어떨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시련 가운데서 낙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새로운 축복을 기대하며 나아가야 합니

다. 대나무가 마디 때문에 가늘고 길면서도 모진 바람에 꺾이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인생의 굽이마다 마디마디 매듭을 잘 지어야 합니다.

성철 스님이 김홍신에게 하신 말씀이라 하지요.

“대나무처럼 살아라...속이 빈 것은 욕심을 덜어 내어 가슴을 비우라는 뜻이

다. 또한 사람마다 좌절, 갈등, 실수, 실패, 절망, 아픔, 병고, 이별 같은 마디

가 없으면 우뚝 설수 없다는 뜻이다.”

-김홍신 <인생사용 설명서> 중에서-

7월 첫 주일, 한 해의 새로운 절반을 시작하는 날,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는 저 대나무가 전합니다.

“매사에는 시종이 있으니 마디마다 매듭을 잘 짓고 새롭게 시작하라!”

/사랑으로 샘물